佛敎 이야기/사찰사진

아, 영산회상도! ... 지리산 쌍계사

일하는 사람 2009. 12. 20. 13:29

지리산 쌍계사

 


 가람 배치도

 

...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

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

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3점(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

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

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현재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진 금당(金堂)에 금당선원이 있어 눈푸른 납자들의 정진이 이어지고 있으

며 전통강원(傳統講院)과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설치되어 바야흐로 선맥과 강맥, 그리고 율맥의 법통

이 바로선 수행도량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경산도량 108사찰 기도순례 제2차 순례길이었으며 종일 비가 내렸다.

이 날,  칠불사와 피아골 연곡사도 함께 참배하였다.

 

쌍계사 일주문

 

벽암스님께서 조선 인조 19년(1641년)에 조성하시고 1977년, 고산스님께서 중수하셨다고 한다.

 

금강문

 

...이 문은 신라 문성왕 2년(840년)에 진감선사가 창건하였고, 조선 인조 19년(1641년) 벽암스님이
중창, 1979년 고산스님이 중수한 것이다.  문안에는금강역사(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금강역사는 부처님과 불법, 스님들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여 불교를 수호하고 악(惡)에 철퇴를 내리는 천신(天神)이다..

 

천왕문 
 
...천왕문은 사천왕(사천왕)을 봉안한 문이다. 사천왕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들과선인(선인)을 돕는 네 분의 신이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주를 다스리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주를 다스리는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의 네 분이다...


 

쌍계사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세 개의 문을 지나야 대웅전이 나온다. 

각 문마다 모셔진 사천왕의 표정도 재미있다.

세 문을 통하는 중  왼편 대숲에 눈길이 머물고..비가 내려 곧고 푸른 대나무와 빗소리가 잘 어울렸다.

 

쌍계사 팔층석탑과 팔영루  
 

구층탑으로도 소개 되어있다. 

마지막 천왕문을 나오니 탑이 우뚝 서 있고 탑전마다 작은 풍경이 조롱조롱 달렸다.

뒤편 누각이 팔영루다.

 

...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三顆)와 산내 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二顆)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一位)를 모셨다 ...

 

... 이 곳은 우리나라 불교 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774년-850년)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음악(梵唄)을 만든 불교 음악의 발상지이며 훌륭한 범패 명인들을 배출한 교육장이다.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써 어산(魚山)범패를 작곡했다고 해서 팔영루라고 한다. 신라 문성왕 2년(840년)진감선사가 창건하였고 조선 인조19년(1641년) 벽암 스님이 중수한 후 1978년 고산스님이 완전히 중수하였다 ...

 

대웅전 (보물 500호)

 

... 대웅전은 진감선사가 신라 문성왕 2년(840년) 초창한 이래 조선 인조 19년(1641년) 벽암 각성스님

의중수, 숙종 21년(1696년) 백암 성총스님의 중수, 영조 11년(1735년) 법훈스님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에는 세분의 부처님이 계신데 중앙이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이고 좌측이 아미타불,
우측이 약사여래불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 기와집이다.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외 3출목 내 3출목으로 기둥위는 물론 기둥

사이평방위에도 짜올린 다포식이다. 첨차는 교두형이고 살미첨차의 바깥끝은 쇠서로 되었고, 안쪽은 교두형으로되어 있어 건실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다 ...

 

순례당일은 대웅전 중수 중이서 임시로 만든 법당에서 참배를 하였다.

 

진감국사 대공탑비 (국보 47호)
 
... 이 비는 신라 정강왕이 신라말의 고승 진감선사 혜소(774년-850년)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던옥천사(玉泉寺)를 쌍계사(雙磎寺)로 명명하고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857-?)이 비문을 짓고 환영스님이 각자하여887년에 건립되었다. 대사의 속성은 최씨이고, 시호는 진감선사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애장왕(哀莊王)5년(804년) 불도를 닦으러 당나라에 들어가 신감대사 (마조도일의 80대 제자로 남종선의 선사)밑에서 스님이 되었다.


그후 숭산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다시 종남산에 들어가 3년간 더 도를 닦았다. 흥덕왕 5년(830년)

에 귀국하여상주(尙州) 모악산 장백산(長栢山)에서 선을 가르쳤다. 다시 지리산 화개곡에 들어가 옥천사를 짓고 여생을 마쳤다. 대사는 범패에 능하여 그 맑은 소리로써 대중을 널리 교화하였음은 유명하다.

 

비문의 자경은 2.3cm의 해서이다. 이 탑비는 귀부와 이수 및 비신을 완전히 갖추고 있으며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가운데 하나이다. 귀부의 등에는 간결하게 귀갑문이 조각되었으며 귀두는 용머리

의 형상을하고 있다. 귀갑의 중앙에는 방형의 비좌가 마련되어 비신을 받게 되었는데 네면에 운문(雲紋)이 양각되어 있다... 

 

 

금당선원입구 돈오문

 

비 속을 세분의 수녀님들이 참배오셨다. 

관세음보살 ... 안녕하세요?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인데 동안거를 앞두고 개방중이었다.

'금당 참배가능' 이라는 글귀를 보고 반가움에 계단을 단숨에 올라서니 방금 내려가신 수녀님들 외에는 아무도없다. 

 

선방 곁의 정자형으로 지어진 수돗간에 칫솔과 바가지들이 걸려 있었다.

처마끝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투박한 내 발자국소리는 왜 그리 짐스럽던지...

 


청학루 

 

팔상전과 마주보고 있는 누각이었다.

지붕 가운데가  내려앉아 세월을 느끼게 해 주었는데 단청색이 고와 언뜻 보면 새로지은 듯 산뜻하다.
 
... 쌍계사 팔영루와 더불어 금당 일원 전각들의 관문 역할을 한다.

형태 및 구조는 삼층 목조기와와 맞배집으로 정면향(정면향)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고려 공민왕 6년(1357년)에 진정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인조19년(1641년)에 벽암선사가 중건하였고 1978년 고산스님이 중수하였다 ...


팔상전 
 
... 이 전각은 고려 충렬왕 6년(1290년) 진정국사가 초창하여 조선 세조 12년(1466년) 선비대사가 중수하고 숙종 4년(1678년)에는 천봉선사가 순조임금때에는 화악선사가 중수하였으며 1978년 고산스님이 다시 중수하였다고 한다...

 

영산회상도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금당(육조정상탑전) 
 
... 이 금당 건물 내에는 중국 선종(선종)의 제 6대조인 혜능대사(慧能大師)의 정상(頂相), 즉 머리를 모

시고 있다. 신라 성덕왕때 당나라의 혜능대사를 만나 보는 것이 원이었던 삼법스님이 당나라에 유학했을 때에는 혜능대사가 이미 고인(故人)이 되었으므로 그의 무덤을 찾아 머리를 모셔 와 돌로써 만든 석감(石龕)을 넣어 이곳 땅밑에 안치했다는 것이다.

 

그후 신라 민애왕때 진감선사가 건물을 세워 육조영당(六祖影堂)이라 이름했으며, 현재
석감위에 세워져 있는 7층 석탑은 1800년대에 주변에 있던 목압사의 석탑을 용담스님이 옮겨와 세운

것이고, 이후부터 육조정상탑으로 불리웠다.

정면에 걸려있는 현판은 조선시대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 

 

가운데 하얗게 보이는 탑이 육조정상탑이다. 

참배를 위해 들어설 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마가 서늘해오고 짙푸른 두려움 같은 것이라 할지...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전체 8폭이었다.  앞문이 닫혀있어서 전체를 담을 수가 없어 한 폭씩 찍었다.

참배를 올리며 영산회상도를 모셔가겠습니다...라고 발원 올리고.

 

나한전

 

 



성보박물관

 

영산회상도 등 귀한 자료들에 관한 자료가 많다고 들었다.  다음 인연을 기다려보며 그냥 지나쳤다.


쌍계사 경내의 가을정취


쌍계사 입구 찻집

봄이 되면 하동 십리벚꽃길이 유명하고 그 길 따라 가면 쌍계사가 있다는 정도로만 알았다.

혹은 지리산행때 수많은 산행코스 중의 하나가 '쌍계사 불일폭포코스' 라는 것 정도로만 알았었다.

 

진감국사 대공탑비니 영산회상도니,  

보물이니 국보니 해도 그런갑다... 정도로만 인식하고  

더군다나 육조정상탑에 관해서는 가기 전만 해도 그나마 유인물 만드는 구실로  이름만 듣고 갔었다.

 

문중을 돌며 선지식을 친견하고 불사의 현장을  내 눈으로 보고 듣고 느껴보니,

짧은 시간이지만 경전을 열어보고 공부랍시고 한 공덕으로 알름알이가 좀  커진것이 느껴진다.

 

커진 알음만큼 다른 것은 채우지 말고 오직 하심으로만 채워지기를 발원올립니다.

그리고 채워진 곳에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닮은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배시시 웃음나는 기억들 새록새록  더듬으며 오늘도 정진하는 불자 되옵기 부처님전에 서원올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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