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이야기/사찰사진

월출산 무위사

일하는 사람 2009. 12. 20. 13:05
배흘림기둥을 보며 여인네 허리춤을 떠올리다
달빛과 벽화 속 수월보살이 함께 떠오르는 월출산 무위사
  
▲ 무위사하면 떠올리게 되는 보존각에는 29점의 벽화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 임윤수
모난 돌은 남을 다치게도 하지만 자신 또한 먼저 정을 맞게 되듯, 인간의 모난 마음 또한 남에게도 상처를 주지만 결국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기에 인생은 둥글둥글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산사를 대표하는 절 이름은 나름대로 상징성과 나름대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말하는 '반야' 나 '문수'나 '보현'등이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에서 비롯되어 절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음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절 이름뿐 아니라 직․간접으로 듣게 되는 스님들의 법문엔 정말 심오한 의미가 농축된 말들이 많습니다. 성철스님이 말씀하신 "산은 산이요, 강은 강이요"란 말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며 진리입니다. 가장 평범한 말이지만 알 듯 모를 듯한 뭔가가 있습니다. 하기야 구도자가 평생을 수행한 결과로 얻어진 진리며 깨우침으로 토해낸 말이니 쉽고도 깊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법력 높은 고승일지라도 그 임께서 남긴 말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한 말뿐이라면, 듣는 이의 입장에선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온전한 진의는 다 알지 못해도 일단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살아있는 법문이라 생각됩니다.

▲ 일주문을 갖는 것조차 사치라 여겼는지 사천왕문에 일주문을 대신해 ‘월출산무위사’라는 편액을 달았습니다.
ⓒ 임윤수

▲ 사천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국보 13호인 극락전이 보입니다.
ⓒ 임윤수
딱히 어느 스님의 법문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비결이 숨어 있을 것 같은 소욕지족(小慾知足)이나 오욕지족(吾慾知足), 해탈하고자 하는 수행자의 지침이 될 수도 있는 단욕무구(斷慾無求) 등이 언뜻 심오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법문으로 떠오릅니다.

무소유와 해탈의 경지에 이름을 일컫는 '무위사'

넉 자의 글에 행복의 비결이 숨어있고 수행자의 지침이 들어있다고 하니 어렵고도 쉬운 게 법문이며, 그 법문에 스며든 비결인 듯합니다. 찾아가는 산사의 이름에서도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 뜻풀이를 해 보지만 '무위사' 만큼 소탈하게 가슴에 와 닿는 절 이름도 흔치 않습니다.

그 뜻이 너무나 거창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름도 있지만 아무런 경계 없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절 이름이 바로 '무위사'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뜻을 알고 나면 무위사란 절 이름이야말로 속세의 우리들이 구하고자 하는 깨달음의 종착지며 피안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무위(無爲)란 수행자는 물론 불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무소유와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호남의 금강이라 일컫는 월출산에서 오랜 세월동안 무소유와 해탈의 경지를 이룬 듯 요란스럽지 않게 자리하고 있는 무위사는 서기 617년인 신라 진평왕 39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대략 1400여 년 된 천년고찰입니다.

▲ 3층 석탑과 나란한 극락보전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 규모입니다.
ⓒ 임윤수
호젓하고 비탈진 오솔길을 걸으며 물소리와 바람소리에 마음을 실어보는 것도 좋지만 때론 눈길 후련하도록 탁 트인 평지를 걷거나 달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 능선에서 바라보는 산하의 탁 트임이 소나기와 같이 후련해서 좋다면, 처음부터 눈길을 가릴 것이 없어 마냥 탁 트인 평지 길에서 얻는 후련함은 느낌 없이 젖어드는 이슬비 같은 친밀감과 편안함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능선들은 허리 굽힌 부하들처럼 느껴지니 정복자가 느끼는 거만한 성취감을 주지만, 굽어볼 것 없이 나란히 가야하는 평지가람 진입로는 동반자로의 동질감과 위안을 줍니다. 나주평야를 지나야 하는 무위사 가는 길은 기복 없는 평지를 충분히 달려서야 이를 수 있으니 이래저래 평야에서 얻는 후련함과 편안함이 있습니다.

꼼꼼한 시감을 갖춰야 '무위사' 제대로 볼 수 있어

어느 산사엘 가든 정갈한 육감과 느낌이나 감동을 가감 없이 받아들일 마음이 준비돼야 하지만 무위사를 찾아갈 때는 특히 꼼꼼하고 세심한 감각을 필요로 합니다. 소리가 좋은 곳을 찾아갈 때 챙기는 미세한 청각만큼이나 찬찬하고 꼼꼼한 시감(視感)을 꾸려야 합니다.

▲ 극락전 내부에는 아미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 임윤수
섬세한 청각이 선율에 담겨진 작곡가의 아름다운 감정과 미묘한 표현까지 읽어 들이듯, 꼼꼼한 시감(視感)은 무위사에 보관된 많은 벽화 속에 담겨져 밀교처럼 전해지는 선승들의 불심과 구도의 흔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확대경이 되고 가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주문 하나 갖는 것조차 그 이름에 부담이 될까 그랬는지 무위사엔 별도로 일주문하나 없습니다. 몇 계단을 올라서서 '월출산무위사(月出山無爲寺)'란 편액을 달고 있는 전각을 들어서는 것으로 무위사는 그 도량이 시작됩니다. 이왕 세워진 전각이니 없는 살림에 보탬이라도 하려는 듯 전각으로 들어서면 좌우로 사천왕상을 모셨으니 천왕문이라 할 수도 있을듯합니다.

네 명의 천왕이 무섭게 두 눈 부릅뜨고 불국정토의 외곽을 지키는 출입처가 사천왕문이니 무위사는 사천왕문이 일주문이며 불이문을 대신합니다.

▲ 극락전의 가지런한 서까래가 마치 합장을 한 손길처럼 느껴집니다.
ⓒ 임윤수
천왕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무위사 극락전이 언뜻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으로 낯설지 않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은 오래지 않아 수덕사 대웅전과 봉정사 극락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손바닥을 경사지게 맞대어 세운 듯한 맞배지붕 구조입니다.

알록달록 화려했었을 단청은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드니 고색의 기풍을 갖추기 위해 모든 것 다 버려 무소유가 된 듯합니다. 배불뚝이처럼 허리춤이 불뚝 불거진 배흘림기둥은 맨살 같은 나무 색을 다 드러내고 댓돌에 올라서서 맞배지붕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기둥하나 없어 막힘없는 극락전 내부엔 과거불인 아미타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불로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모셔져있습니다.

무위사 하면 아무래도 가람의 형식이나 전각들보다는 벽화가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극락전 정면 오른쪽에 있는 보존각은 여느 사찰의 전각들과는 다릅니다. 마치 어느 고 미술관의 전람실 같은 분위기입니다.

▲ 열시왕을 모신 명부전이 조용하기만 합니다.
ⓒ 임윤수
그렇다고 도회지 화랑이나 박물관처럼 쇠창살에 철망 같은 보안시설이 덕지덕지 되어있는 삭막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어찌 보면 엉성하게, 또 어찌 보면 허술한듯하지만 찾는 이의 양식을 믿어주는 커다란 배려와 믿음이 깔려진 구조입니다. 보여줄 것 다 보여주고 보호할 것 다 보호하며 대대손손 지켜나갈 자신감 있는 구조입니다.

보존각 안에 보존되고 있는 아미타삼존도와 수월관음도를 포함해 29점의 벽화를 제대로 가슴에 담고 마음에 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요구했던 세심한 관찰력과 찬찬한 시각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불교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상당한 깊이도 요구됩니다. 두루마리 화선지가 아닌 흙벽에 그려진 벽화엔 역사가 담겨있고 구도자의 고뇌와 불심이 배어있습니다. 무위사 벽화에도 전설하나 담겨있으니 이야기보따리를 풀듯 새겨봅니다.

탁발승, 파랑새가 되어 벽화를 그리다

주 법당인 극락보전 불사를 다 끝내고 모든 대중들이 수행정진하며 백일기도를 드리고 있던 어느 날, 남루한 가사에 걸망하나 짊어지고 탁발을 나선 듯 한 노승 한 분이 무위사를 찾아왔었답니다. 무위사에서 하루를 기거한 노승은 주지스님을 찾아 자신이 불화를 조금 그릴 줄 아니 법당에 벽화를 그리겠다고 자청하더랍니다.

▲ 문발을 드리운 요사채가 시원해 보입니다.
ⓒ 임윤수
비록 늙고 허름한 복장이었지만 노승으로부터 비춰지는 범상치 않은 광채와 기풍에 주지스님은 기꺼이 벽화를 그릴 준비를 하겠노라 약속을 했답니다. 벽화 그리기를 약속 받자 그 노승은 어떠한 경우든 벽화를 그리는 49일 동안은 그 누구도 법당을 들여다봐서는 안 되니 그 약속을 꼭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랍니다.

그렇게 다짐을 받고 법당으로 들어간 노승은 모든 문을 걸어 잠근 후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 들어간 노승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밖으로 나오질 않았습니다. 시간이 더욱 지나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노승은 밖으로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먹을 음식조차도 달라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약속한 49일이 거반 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어 사뭇 궁금해진 주지스님은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해 노승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문틈으로 법당 안을 엿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노승은 보이질 않고 파랑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고즈넉하게 세워진 3층 석탑에서 무소유와 무위를 떠올리게 합니다.
ⓒ 임윤수
숨을 죽여 가며 안을 좀 더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파랑새는 벽화를 다 그린 후 마지막으로 관음보살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 점안을 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숨죽여 들여다보던 스님이 더 이상 숨을 참지 못해 한 숨을 몰아쉬니 인기척을 느낀 파랑새는 붓을 떨어뜨리고 어디론가 포르르 날아가 버렸답니다.

이러한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무위사에 보관중인 후불벽화의 관음보살 눈에는 눈동자가 없으니 '참지 못하면 실패 할 수도 있다'는 또 다른 가르침을 전설로 들려준 듯합니다.

관음보살을 향해 예배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내려다보고 있는 수월관음을 그린 수월관음벽화는 보살이 입고 있는 옷자락의 곡선에서 너울대는 파도의 율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라춤을 추던 곱살한 얼굴에 살짝 드러낸 여승의 뽀얀 피부가 촉감처럼 느껴지고 나풀대는 옷깃율동을 자아내게 하는 날라리 소리와 바라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올듯합니다. 관음보살의 자비스런 미소와 보살핌이 짙은 안개처럼 사방에서 다가옴이 환상처럼 그려집니다.

▲ 속을 비움으로 웅장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범종이야 말로 무위의 전형입니다.
ⓒ 임윤수
수수하고 깔끔한 무위사 극락보전은 국보 13호라는 역사적 가치성도 있지만 한 때는 수륙사(水陸寺)라 하였다는 기록에서 극락정토를 갈구하던 사람들에게는 위안과 내생을 기대하게 하는 피안의 가람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월출산 기암에 휘영청 밝은 달이 걸릴 즈음, 벽화 속 수월관음보살의 춤사위 같은 더덩실 율동이라도 보게 된다면 속세의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자아조차 망각할 터니 절로 무위가 될듯합니다.

무위사엔 극락전과 보존각 말고도 명부전과 미륵전, 산신각, 천불전, 삼층석탑, 선각대사 부도비 등이 있습니다. 무소유와 해탈을 의미하는 무위사를 나서면서도 수월관음도의 나풀대는 곡선이 눈앞에 아롱이고 극락전 배흘림기둥이 여인네 허리춤처럼 다가오는 것은 번뇌의 업이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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