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이야기/생활속의 金剛經

금강경-1

일하는 사람 2009. 12. 16. 19:26
 

경 이름 해설

 

* 금강 : 能斷金剛(능단금강) --모든 쇠를 이기는 쇠 중의 쇠

* 반야 : 지혜

* 바라밀 : 바라밀다의 준말, ‘바라’는 언덕, 밀다는 도착, 저 언덕에 도착함

  法輪(법륜) 스님의 주장에 따르면 이 말은 복고적인 느낌을 풍긴다. 불교에서 서쪽을 이상향으로 보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아리아인들은 인도서북부로부터 인도로 들어오고,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힌두스탄 평원을 지나오면서 수 많은 크고 작은 강들을 건넜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월이 흐르고 신분제도가 세분화되고 인간 사회에 각종 차별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서민들로 볼 때는 옛날 즉 서쪽에 살 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쪽 강 건너 서쪽 언덕에 살 때가 좋았었다라는 생각이 인도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이다.

* 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능단금강바라밀경,vajarcchedika-prajna-paramita-sutra)

구마라즙에 의해 처음 한역되었으며, 육조 혜능 스님 이후 선종의 所衣經典(소의경전)이 되었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는 금강과 같은 지혜로 저 언덕(진리의 세계, 행복의 세계)에 이를 수 있음을 설한 부처님 말씀이라는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되어 있다. 아래 글은 부처님의 말씀은 평어로 수보리의 말씀은 존대어로 기록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해 있으므로 누구의 말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금강경 원문 중 핵심적인 부분만 발췌했으므로 관심 있는 사람은 금강경 전체를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경]

경이 설해진 곳--法會因由分

舍衛國 祈樹給孤獨園(사위국 기수급고독원 : 祇園精舍)--코살라 국의 수도인 사위성(舍衛城) 남쪽에 있는 불교사원, 원래 기타(祗陀, Jeta) 태자의 소유였으나, 수달타(須達多, Sudatta)가 사서 지었다. 수달타는 외로운 사람에게 많이 베풀었으므로 급고독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수달타가 이 동산을 부처님을 위해 바치려 하자 소유주인 기타 태자는 금으로 동산을 덮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수달타가 묵묵히 금을 동산에 깔기 시작하자 감동 받은 기타 태자가 동산의 일부를 무상으로 제공하여 기원 정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설법을 청한 사람--善賢起請分

수보리(須菩提)--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고 부른다.

주제--善賢起請分

○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선남자 선여인이 부처님의 세계에 들려한다면 어떻게 머물러 생활하며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위 없는 바른 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진리를 깨달음

* 부처님의 진리의 세계에 들려는 사람은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大乘正宗分

○ 所有一切衆生之類.....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소유일체중생지류.....아개령입무여열반 이멸도지)--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내가 모두 남김 없는 열반에 들도록 인도하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 無餘涅槃(무여열반)--유여열반은 심적 고통을 사라졌으나 육체적 고통은 남아 있는 상태, 무여열반은 육체적 고통도 사라진 상태

○ 如是滅度 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여시멸도 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 득멸도자)--이와 같이 한량 없은 중생을 인도하였으나 실제로는 인도 받은 중생이 없다.

○ 何以故...若菩薩 有我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하이고...약보살 유아상 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다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 我相(아상)--나에게 집착하는 것

* 人相(인상)--나와 남을 구분하는 것

* 衆生相(중생상)--중생의 본능적인 고집, 좋아하는 것은 취하고 싫어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

* 壽者相(수자상)--생명에 대한 집착

* 부처님의 세계에 들려는 사람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가? 모든 생명체를 부처님의 세계에 들게 하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한 중생도 제도했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의 세계에 들려는 자는 아상과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4상

첫째로 아상(我相)의 원문인 'atman'은 인도 전통 종교인 브라흐만의 아트만 사상에 대한 부정입니다. 아만이란 고정된 실체적 자아 관념으로 브라흐만에서는 윤회의 주체라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sattva'(중생상)는 ’존재하는 모든 것‘ 혹은 ’살아있는 모든 것‘이란 의미로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모든 중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는 불교 내부적으로는 수행자들이 중생과 보살이라는 이원론적인 분별심에 빠져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죽어있는 것들과는 다르다는 이원론적인 분별심에 빠져있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jiva'(수자상)는 ‘목숨’ ‘생명’이라는 말로써, 자이나교에서 ‘생사를 초월해 있는 존재’ ‘순수영혼’이라는 의미로 자이나교의 가르침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며, 지바라는 생사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한 순수영혼이 실체로써 존재한다는 상에서 벗어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pudgala'(인상)는 ’개인‘ ’인간‘ 등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쓰이나, 부파불교의 한 부파인 독자부(犢子部)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의미하는 말로 유위법과 무위법의 중간자적 존재라고 상정하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이러한 생사를 초월한 주체인 뿌드갈라가 존재한다는 상을 가지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법상스님의 금강경 강의)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妙行無住分

○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보살은 마땅히 대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해야 한다.

○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보살 흥여시보시 부주어상)--보살은 마땅히 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해야 한다.

* 보시를 하되 내가 이렇게 무엇을 누구에게 보시했다는 생각이 없이 보시해야 한다.

* 보살은 4상이 사라졌으므로 너무나 당연한 얘기이다.

신약성경에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진정한 사랑을 베풀라는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상대방을 상대방으로 느끼지 않고 나를 나로 느끼지 않는 것, 즉 자기와 타인의 구별이 사라진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미 천국에 와 있다. 즉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 있다.


무엇으로 부처님을 알아 볼 수 있는가?--如理實見分

○ 可以身相 見如來不(가이신상 견여래부)--신체의 모습으로 부처를 알아 볼 수 있는가 없는가?

○ 不也 不可以身相 得見如來(부야 불가이신상 득견여래)--아닙니다. 신체의 모습으로 부처님을 알아 볼 수 없습니다

○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신체의 모습이라는 것은 변치 않은 일정한 모습을 갖춘 신체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기 때문입니다.

* 부처는 32가지 신체적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고 변화무상하니 모든 것이 일정한 실체가 없음을 알면 부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얻음이 없는 진리 설한 바 없는 설법--無得無說分

○ 如來 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여래 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는가?

○ 如來有所說法耶(여래유소설법야)--부처님은 진리를 설한 바가 있는가?

○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無有定法如來可說(여아해불소설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역무유정법여래가설)--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이해할 것같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할 만한 일정한 법이 없으며, 또 여래께서 설하셨다고 할만한 일정한 법이 없습니다.

○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 모두 취할 수 없은 것이며 설할 수도 없는 것이며, 법도 아니고 법아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그러한 것은 모든 현인이나 성인이 모두 무위법으로써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 진리라고 하니까 무어라고 딱 정해져 있는 대상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미 국한되어 버려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는 이렇다 저렇다고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상황에 따라 대중들의 근기에 따라 방편으로 설하신 것 뿐이다. 그러므로 설하신 법이 모두라고 생각하여 거기에 집착하면 즉시 도에서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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