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이야기/생활속의 金剛經

금강경-3

일하는 사람 2009. 12. 16. 19:23
 

[하경]

죄업을 소멸케 함--能淨業障分

○ 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선남자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 선남자선여인이 이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되 만약 다른 사람의 업신여김을 받는다면

○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이 사람이 전생에서 지은 죄업이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정도라도

○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금세인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지금 사람들이 업신여겼으므로 전생의 죄업이  곧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다.

○ 若善男子善女人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我若具說者 (약선남자선여인 어후말세 유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아약구설자)--선남자선여인이 말세에 이 경을 지니고 읽고 외워서 얻은 공덕을 내가 모두 말한다면

○ 或有人聞 心卽狂亂 狐疑不信(혹유인문 심즉광란 호의불신)--혹 듣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어지러워 믿지 못할 것이다.

* 부처는 이미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이르지 않은 사람에게 그 경지를 설명하면 믿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의 공덕은 말할 나위 없이 무상정득각을 얻는 것이다. 무상정득각이 지니는 공덕은 다른 공덕과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무상정득각을 얻는다고 하니 무엇인가 얻을 대상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얻을 만한 일정한 것이 없는 것이 바로 무상정등각을 얻는 것이다.



‘나’가 없음--究竟無我分

○ 世尊 如來說人身長大 卽爲非大身 是名大身(세존 여래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사람의 몸이 크다고 하신 것은 큰 몸이 아니요 이름이 큰 몸입니다.

* 크다 작다 기준이 없는 만큼 크다 작다고 하는 말은 단지 말이 그러할 뿐이다. 우리가 보통 크가 작다고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사용되어지는 사물과 견주어 그러하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내가 또는 우리가 사용하는’ 또는 ‘자주 보는’등의 말이 생략되어 있다.

○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수보제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수보리야 보살도 이와 같으니 이와같이 말한다면

○ 我當滅度無量衆生 卽不名菩薩(아당멸도무량중생 즉불명보살)--“내가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한즉 보살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 名爲菩薩(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 명위보살)--왜냐하면 실제로 보살이라 이름할 만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是故 佛說一切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시고 불설일체법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그러므로 부처님이 설한 일체법이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 부처님의 진리의 세계는 상대의 개념을 초월한 것이다. 일체의 상(相)에 집착하지 않으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어져 나오는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할 때도 장엄하지 않은 것과 상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장엄이란 원래의 청정한 모습을 회복하는 것일 뿐이며 어떤 상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일하게 봄--一體同觀分

○ 爾所國土中 所有衆生 若干種心 如來悉知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이소국토중 소유중생 약간종심 여래실지 여래설제심 개위비심 시명위심)--저 국토 가운데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부처님은 다 아신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마음이란 모두 마음이 아니고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소이자하 수보리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왜냐하면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그러한 것은 참 마음이 아니며 그것이 참 마음이 아닌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참 마음이 된다.) 또한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를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라고 하는 것도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현재를 사고의 대상으로 만들 수 없다.


색(色)과 상(相)을 떠남--離色離相分

○ 如來 不應以具足色身見 何以故 如來說 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여래 불응이구족색신견 하이고 여래설 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여래를 색신을 구족한 색신으로는 알아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구족한 색신은 구족한 색신이 아니며 이름이 구족한 색신이기 때문입니다.

○ 如來 不應以具足諸相見 何以故 如來說 諸相具足 卽非具足 是名諸相具足(여래 불응이구족제상견 하이고 여래설 제상구족 즉비구족 시명제상구족)--여래를 모든 모습을 갖춘 것으로 알아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상을 갖추었다고 하심은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모든 상을 갖추었다고 함이기 때문입니다.

* 부처는 여러 가지 신체적 특징과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 그 신체적 특징과 모습이 부처인가? 아니다. 부처란 모든 상을 떠나 조그마한 번뇌도 사라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겉모습에 얽매여서는 부처님을 바로 알아볼 수 없다.


설한 법이 없음--非說所說分

○ 須菩提 汝勿謂 如來作是念 我當有所說法 (수보리 여물위 여래작시념 아당유소설법)--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설한 법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지 마라.

○ 莫作是念 何以故 若人言 如來有所說法 卽爲謗佛 不能解我所說故( 막작시념 하이고 약인언 여래유소설법 즉위방불 불능해아소설고)--이러한 생각을 짓지 마라. 왜냐하면 만약 사람이 여래가 설한 법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며, 내가 설한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수보리 설법자 무법가설 시명설법)--수보리야, 법을 설한다고 하는 것은 설할 법이 없다는 것이며 이름이 법을 설한다고 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평등한 진리--淨心行善分

○ 是法平等 無有高下 是名 阿耨多羅三藐三菩提(시법평등 무유고하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 법은 평등하여 상하가 없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한다.

○ 以無我 無人 無衆生 無壽者 修一切善法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아인중생수자의 4상이 없이 모든 선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

○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說卽非善法 是名善法(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설즉비선법 시명선법)--수보리야 선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처님이 설하되 곧 선법이 아니므로 이름이 선법이다.

* 진리가 신분의 고하를 가릴 이가 없다. 누구나 진리에 이르는 길을 가면 당연히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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