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째즈&블루스

Eric Clapton

일하는 사람 2010. 7. 2. 09:58


Layla - Eric Clapton

 Double Trouble
 Have You Ever Loved A Woman

 Danny Boy

 Early In The Morning

 Let It Grow
 Change The World

 Worried Life Blues
 Lay Down Sally 
 Layla

 River of Tears

 Singin The Blues
 Give Me Strength

 Motherless Children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George Harrison & Eric Clapton   

 Wonderful Tonight  

 Help The Poor

B.B King & Eric Clapton

 Tears in heaven

 

 
에릭 클랩튼은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음악 전설'이다. 40여 년의 음악 여정 동안 그가 쌓아

올린 메리트는 가히 대단하다. 야드버즈(Yardbirds)와 존 메이올스 블루스브레이커(John Mayall`s Bluesbreakers) 시절 블루스의 부흥을 주도했으며, 크림(Cream)의 활동기간 동안 헤비메탈의 원형을 제공했고, 재즈와 블루스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솔로로 독립하고부터는 '진짜 블루스'에 접속불가를 외치는 대중들에게 팝 지향적인 '달콤 쌉싸름한 블루스'를 패스워드로 내놓아 블루스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그래미 트로피를 13번이나 받았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1992년 야드버즈, 1993년 크림, 그리고 지난해 개인 자격으로 헌액된 것에서도 클랩튼의 공로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지난해 '블루스의 제왕' B.B 킹(B.B King)과 협연한 작품〔Riding With The King〕으로 이번 그래미 시상식 '최고의 트래디셔널 블루스 앨범(Best Traditional Blues album)'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클랩튼은 '기타의 신', '슬로우 핸드(Slowhand)'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 기타 테크닉에 있어서도 대가(大家)의 경지에 올랐다. 감정을 질펀하게 쏟아내면서도 정확하고 절제된 테크닉을 구사하는 벤딩 주법(일명 쵸킹)과 비브라토는 다른 연주자들이 흉내조차 힘들 정도다. 그의 기타 연주와 관련하여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칭찬 코멘트를 들어보자.

“에릭은 정말 재주가 많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감정과 함께 블루스를 연주한다. 그가 연주할 때 당신은 그것이 블루스라는 것을 알 것이다.”  (B.B King)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블루스 연주가 뛰어나다. 왜냐하면 그는 블루스를 공부했고, 그것에 대해 당당하기 때문이다.” (Jeff Beck)

“내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나는 그의 연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바로 하늘에서 치는 천둥번개 같았다.” (John Etheridge)

하지만 이런 융숭한 대접에 대해 클랩튼은 “나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나는 악평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소화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평도 마찬가지다.”며 자신을 향한 관심을 무척 꺼려했다. 그를 추종하는 후배 뮤지션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나같이 연주하는 것은 아마 무리일 것이다. 자기 스타일로 연주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외보다는 그들만의 길을 개척할 것을 충고한다. 그의 음악과 인생 여로(旅路)가 굴곡이 심했기에 그 말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에릭 클랩튼은 1945년 3월 30일 영국 서레이(Surrey)주의 리플리(Ripley)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생일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블루스에 빠져들었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여 할머니 품에서 자라며 외로운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흑인들의 비참함과 슬픔을 노래한 블루스가 그에게 찾아간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클랩튼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빅 빌 블룬지(Big Bill Broonzy), 블라인드 윌리 존슨(Blind Willie Johnson) 등 초기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성장했다. 특히 '델타 블루스의 왕'이라 불리는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로버트 존슨의 앨범들은 내가 음악적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야드버즈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그의 뛰어난 블루스 기타 테크닉은 단숨에 그룹의 사운드를 특징지었고, 매니저 지오지오 고멜스키(Giorgio Gomelsky)는 그에게 '슬로우 핸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클랩튼은 그룹의 음악이 상업적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며 1965년 3월 팀을 떠나 존 메이올이 이끌었던 블루스브레이커스로 자리를 옮겼다. 야드버즈를 탈퇴한 직후 그가 연주했던 'For Your Love'는 영국 차트 3위를 기록했다. 이후 야드버즈는 제프 벡과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가세하며 전성시대를 누렸다. 바로 록음악계의 '3대 기타리스트'가 야즈버즈를 통해 모두 비상했다. 


이 당시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와 관계된 에피소드 한가지. 그는 블루스브레이커스의 휴지기 동안에 다른 뮤지션들과 전세계를 돌며 블루스 전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클랩튼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몇몇 멤버들이 영국으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클럽에서 계속 머물며 공연을 계속했다. 그는 그러나 강도로 돌변한 클럽 주인의 협박으로 옷과 새로 산 마샬 앰프를 놔둔 채 영국으로 도망쳐야했다. 음악 외에는 모든 일에 문외한이었던 '순수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클랩튼은 블루스브레이커스에서 존 메이올의 독단적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자신만의 그룹을 결성하기로 계획했다. 그는 1966년 존 메이올 몰래 드러머 진저 베이커(Ginger Baker),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Jack Bruce)와 함께 크림을 조직하고 합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음악 전문지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의 폭로로 인해 클랩튼은 블루스브레이커스에서 해고를 당해야만 했다. 이때 런던의 한 빌딩 벽에는 '클랜튼은 신이다(Clapton is god)'라는 문구가 새겨져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에릭 클랩튼은 크림을 통해 '악기 예술의 미학'을 획득했다. 블루스와 재즈가 절묘하게 어울러진 그들의 사운드는 즉흥적이고 빠르며 굉음을 발산했다. 멤버들의 정교하고 뛰어난 연주 실력은 타 밴드와의 간격 차를 크게 벌려놓았고, 음악계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졌다. 그들의 앨범들인 1966년의 , 1967년의 , 그리고 이듬해의 모두 명반으로 손꼽히며 파죽지세의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를 한자리에 모은 더블 앨범 는 미국에서 4주간 정상을 차지하며 멤버들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바로 이 작품에 명곡 'White room'이 수록되어 있다. 그룹은 그러나 서로간의 음악적 견해차를 이유로 1968년 11월 해산했다. 클랩튼의 음악 이력 중 최고의 절정기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후 트리오는 1993년 1월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으로 재결합 공연을 가져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크림의 해체 이듬해 클랩튼은 진저 베이커와 함께 트래픽(Traffic) 출신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페밀리(Family)의 베이스 주자였던 릭 그레치(Rick Grech)를 영입하여 '슈퍼 그룹'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탄생시켰다. 언론에서는 '인스턴트 슈퍼 그룹'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들은 공연 때 '최후의 슈퍼 그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조를 이뤘다. 하지만 언론의 지적대로 그들은 1969년 데뷔 앨범 를 내놓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


에릭 클랩튼의 1970년대는 한 여인과의 슬픈 사랑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다름 아닌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Patti Boyd)였다. 클랩튼은 1968년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조지의 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같은 해 공개된 솔로 음반 에서 기타를 맡을 정도로 조지 해리슨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조지와 음악적 교류를 하면서 패티를 본 후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당시 종교에 심취해 있던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패티 보이드는 클랩튼에게 의도적으로 눈길을 주었다. 음악 밖에 모르던 에릭은 그만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지와의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실의에 빠진 에릭 클랩튼은 술과 마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이런 사랑에 대한 좌절감과 패배감은 1970년 11월에 발표된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의 마스터피스 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남편이 당신을 슬프게 만들었을 때/ 나는 당신을 위로하려고 노력했어요/ 바보처럼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져버렸죠/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꿇게 만들었어요/ 레일라, 당신께 애원합니다/ 제발...'.

수록곡 'Layla'의 구구 절절한 가사처럼 에릭 클랩튼의 상처받은 마음은 노래 전체에 용광로처럼 녹아들었다. 고통스런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바닥까지 긁어내어, 그 고통을 음악으로 걸러냈다. '처절한 내면의 사생화'다. 클랩튼의 이러한 마음에 하늘도 감동했던지 얼마 후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과 이혼했고, 둘은 1979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이 음반은 비록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블루스와 삶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며 걸작의 반열로 들어섰다.


실연의 파장은 매우 컸다. 에릭 클랩튼은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인하여 병원과 요양원을 들락거려야만 했다. 기타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이때부터 드라마틱한 재기 스토리가 전개된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그에게 구세주가 찾아왔다. 그룹 후(The Who)의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hend)였다. 피트는 이미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찬밥취급을 받던 지미 헨드릭스를 영국으로 데려와 음악계에 데뷔시키는 등 '선행'을 벌여왔다. 피트는 클랩튼에게 마약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했고, 1973년 에렉 클랩튼의 레인보우 콘서트를 주최해 재기의 무대를 마련해줬다. 클랩튼은 데릭 앤 도미노스 이후 3년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피트는 에릭 클랩튼이 정신을 못 차리자 하와이안 기타로 머리를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기력을 회복한 에릭 클랩튼은 1년 뒤 재기 작품 <461 Ocean Boulevard>를 내놓았다. 앨범이 출시되기까지는 피트 타운센드와 함께 RSO 레이블의 사장인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의 도움이 컸다. 그는 폐인이 된 클랩튼을 위해 요양장소로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별장을 선뜻 내주며 재기의 기틀을 마련케 했다. 클랩튼도 스틱우드의 호의에 고개 숙여 감사하며 다시 기타를 집어들었다. 스틱우드의 별장주소가 바로 이 앨범의 타이틀이다. 스틱우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이다. 밥 말리(Bob Marley)의 곡을 리메이크한 'I shot the sheriff'는 정상을 차지했고, 'Let it grow', 'Give me strength' 등이 인기가도를 달리며 '기타의 신'으로 부활했다. 이후 연이어 내놓은 앨범들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특히 'Wonderful tonight'이 실려있는 1977년 작품 는 300만장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에릭 클랩튼은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던 이 시기를 잊지 못하고, 1999년 마약 중독자 치료기금을 위해 자신의 기타 100대를 경매에 내놓은바 있다.


에릭 클랩튼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도 꾸준하게 앨범을 발표하지만 별다른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1989년 작품 같은 수작을 낚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룹시절과 달리 음악적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에너지가 없어지고 느슨해진 팝 블루스'라며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함께 현실무대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운명의 여인' 패티 보이드와 헤어지고 이탈리아 투어 도중 만난 젊은 사진작가이자 배우였던 로리 델 산토(Lori Del Santo)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코너(Corner)가 뉴욕 맨하탄의 아파트에서 실족사한 것이다. 나중에 에릭 클랩튼은 “내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온통 경찰관과 의료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졌다.”며 망연자실했던 당시의 심정을 묘사했다.

클랩튼은 그러나 '예전처럼' 기타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기타와 노래에 더욱 몰두했다. 음악만이 유일한 치료제라는 것을 이전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는 1992년 영화 <러쉬(Rush)>의 사운드 트랙에 삽입된 'Tears in heaven'에 죽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실었다. MTV의 제안으로 그 해 녹음된 앨범 에서의 백미도 단연 이 곡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에 실린 애절한 멜로디와 노랫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듬해 그래미는 그에게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등 알짜배기를 포함하여 6개의 트로피를 '위로 선물'로 전달했다. '추억'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재진입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에릭 클랩튼의 상승세는 계속됐다. 1994년 발매한 은 흥행과 평단 양편에서 세계적인 지위를 얻었다. 미국과 영국 앨범차트를 동시 석권하였고, 블루스의 성찬을 담아낸 작품으로 격찬 받았다. 4년 뒤에 내놓은 앨범 또한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에릭 클랩튼은 작품마다 자신의 인생을 투영시켰다. 혼을 불어넣었다. 올해 발표한 앨범 에도 그의 숨결을 살아 숨쉰다. 신작의 기저에 흐르는 물줄기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삼촌의 죽음'이다. 삼촌에 대한 존경심을 작품 전체에 고스란히 옮겼다. “'Reptile(사전적 의미로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뜻)'은 삼촌과 관련이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Reptile'이란 단어는 사랑스러운 말이다.”

이 음반은 프로듀서 사이먼 클리미에(Simon Climie)를 포함하여 전작 의 세션팀이 그대로 참여했다. 또한 시카고 소울의 거장 커티스 메이필드(Cutis Mayfield)의 빈자리를 남겨둔 채 임프레션스(The Impressions)가 부드러운 화음을 더하고 있다. 블루스뿐만 아니라 레게, 컨트리,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로 음악 지류를 넓히고 있는 클랩튼은 새 앨범에서도 그 폭을 확대했다. 퓨전 재즈풍의 기타 연주가 도입됐으며, 라틴 음악의 요소도 엿보인다. 보사 노바의 흥취가 물씬 풍기는 첫 곡 'Reptile'을 비롯해, 'Modern girl', 'Son & sylvia' 등에서 알 수 있다. '리듬'에 대한 클랩튼의 지속적인 실험이다.

선배들을 향한 오마쥬도 계속된다. 에릭 클랩튼의 음악적 스승 중 한 명인 기타리스트 J.J. 케일(J.J. Cale)의 'Travelin` light', 1985년에 세상을 떠난 '점프 블루스의 대가' 빅 조 터너(Big Joe Turner)의 고전 'Got you on my mind' 등이 그것이다. 또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1980년대 히트넘버 'I ain`t gonna stand for it', 레이 찰스(Ray Charles)의 'Come back baby'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두 명의 맹인 거장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는 그러나 '향수'를 풍기지 않는다. 애절하면서도 포근하게 감싸안는 음색과 선율로 그만의 분위기를 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곡조에 맞게 '톤'을 찾아내는, 바로 '기타의 신'만이 할 수 있는 특허품이다.

음악을 만들고 듣는 이가 인간이지만 '비인간적'인 음악이 판치는 요즘이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의 음악과 인생은 접점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지 않는다. 합일점을 찾아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다. 특히 역경 속에서 소중한 음악의 싹을 틔우고 키워냈다. 내면의 고통과 이별의 슬픔을 블루스로 쏟아냈다. '인간의 음악'이다. 당연하다. 허나 바로 이 점 때문에 클랩튼은 전설로 추앙 받는다.

 

 

Eric Clapton / Groaning The Blues

Eric Clapton / Old Love

Stairway To Heaven / Eric Clapton, Jeff Beck

Eric Clapton / Tears in Heaven 

Eric Clapton / Wonderful tonight

Eric Clapton & Jeff Beck - Cause We've Ended As Lovers

 Eric Clapton / Blue Eyes Blue 

Eric Clapton / Layla

 
Layla

What'll you do when you get lonely
And nobody's waiting by your side?
You've been running and hiding much too long
You know it's just your foolish pride

외로울 때나 당신의 곁에서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을 때
당신은 무슨 일을 할 건가요?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도망치고 숨어 있었어요
그건 당신의 바보같은 자존심일 뿐이랍니다

Layla, you've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darling won't you ease my worried mind
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 꿇게 만들었어요
레일라, 이렇게 부탁할게요 제발요
레일라, 제발, 이토록 흐트러진 내 맘을 잡아주지 않겠어요?

I tried to give you consolation
When your old man had let you down
Like a fool, I fell in love with you
Turned my whole world upside down

당신의 그 옛날 남자가 당신을 실망시켰을때,
난 당신을 위로하고 싶었어요
바보처럼,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져버렸죠
나를 둘러싼 세상은 완전히 혼돈에 빠져버렸어요

Layla, you've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darling won't you ease my worried mind

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 꿇게 만들었어요
레일라, 이렇게 부탁할게요 제발요
레일라, 제발, 이토록 흐트러진 내 맘을 잡아주지 않겠어요?

Let's make the best of the situation
Before I finally go insane
Please don't say we'll never find a way
And tell me all my love's in vain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요
내가 결국 미쳐버리기 전에
제발 우리가 길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하지 말아요
그리고 나의 모든 사랑이 헛된 것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Layla, you've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darling won't you ease my worried mind

 
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 꿇게 만들었어요
레일라, 이렇게 부탁할게요 제발요
레일라, 제발,
이토록 흐트러진 내 맘을 잡아주지 않겠어요?

Layla, you've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darling won't you ease my worried mind

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 꿇게 만들었어요
레일라, 이렇게 부탁할게요 제발요
레일라, 제발,
이토록 흐트러진 내 맘을 잡아주지 않겠어요?

 

 

Tears in Heaven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너를 천국에서 만난다면 너는 내 이름을 알까?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너를 천국에서 만난다면 지금과 같을까?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난 강인하게 삶을 계속 살아 가야겠어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난 이 천국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Would you hold my hand
if I saw you in heaven
천국에서 널 만나면 내 손을 잡아 주겠니?
Would you help me stand
if I saw you in heaven
천국에서 널 만나면 날 도와 일으켜 주겠니?
I'll find my way
through night and day
난 밤과 낮을 헤쳐 나가 내 길을 찾아야겠어
'Cause I know I just can't stay
here in heaven
난 이 천국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Time can bring you down
세월은 널 굴복시킬 수 있고
Time can bend your knees
무릎 꿇게 할 수도 있어

Time can break your heart
마음의 상처도 입히고...
Have you beg and plead
beg and plead
애원하고 간청하게 할 수도 있지

Beyond the door,
there's peace, I'm sure
저 문 밖에는 평화가 있을거라 확신해
And I know there'll be no more
tears in heaven
그리고 더 이상 천국에서 흘리는 눈물도 없을 거라고...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너를 천국에서 만난다면 너는 내 이름을 알까?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너를 천국에서 만난다면 지금과 같을까?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난 강인하게 삶을 계속 살아 가야겠어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난 이 천국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난 이 천국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웬만한 팝송팬이라면 에릭 클랩튼의 노래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이 죽은 아들을 위해 부른 곡임을 안다. 또 이 곡이 크게 히트하면서 그가 93년 그래미상 시상식장에서 무려 6개의 트로피를 안고 환한 미소를 띄워 올리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비통한 마음으로 이 곡을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수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온갖 환희와 영광을 다시 한번 만끽했다. '기타의 신'으로서 예전에 보여줬던 왕성한 활동력을 거뜬히 회복했다. 정말 이 곡이 없었다면 그의 인기 생명은 벌써 끝났을지도 모른다.

'천국의 눈물'에는 가슴 저미는 감동이 있다. 얼핏 들으면 통기타 연주의 참으로 단순한 곡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불의의 사고로 잃은 아들을 추모라는 배경이 깔려 있어서 악보 이상으로 듣는 사람의 동정과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아들 코너는 91년 뉴욕의 맨하탄 아파트 53층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한창 재롱을 떨던 네 살박이였다. 40대 느지막한 나이에 얻어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졸지에 잃은 그 슬픔 오죽했을까.

'천국에서 널 만난다면 넌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천국에서 널 만난다면 넌 그대로 똑같은 모습일까?'

그런데 코너의 엄마는 로리 델 산토라는 여인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방송인인 그녀는 지난 86년부터 에릭 클랩튼과 로맨스를 꽃피운 끝에 그의 아들 코너를 낳았다. 여기가 중요한 대목. 오래전부터 그의 기타 연주를 좋아한 올드팬들을 여기서 대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로리 델 산토? 그 사이에 여자가 바뀌었나 보네. 그럼 패티 보이드는 어찌 된 거지?'

그가 패티 보이드와 이혼해 버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같은 혼동은 당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릭 클랩튼하면 딱 하고 떠오르는 여자가 패티 보이드이기 때문이다. 결코 로리 델 산토가 아니다.

이제는 웬 만큼 널리 알려졌지만 에릭과 패티의 관계는 '록역사의 전설적 러브 스토리'로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 에릭은 총각이었지만 패티는 유부녀였다. 그녀의 남편은 다름 아닌 비틀스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

이 드라마틱한 사랑의 이야기는 패티가 에릭 클랩튼에게 슬쩍 추파를 던지면서 시작된다. 남편 조지가 인도사상에 심취한 채 자신을 돌보지 않자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남편의 친구인 에릭에게 묘한 시선을 보낸 것이다. 너무도 아찔하고 위험했던 전술. 그러나 작전은 성공했다. 조지는 다시 패티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사랑의 쑥맥 에릭 클랩튼은 패티의 저의 도 모른 채 짝사랑의 늪에 깊숙이 빠져버렸다.

잃은 것은 사랑이요, 얻은 것은 술과 마약이었다. 알콜과 약물에 찌들어 그는 완전히 심신이 망가져 버린다. 그는 '시계 제로'의 상황에서 복받치는 실연의 분노와 좌절을 고스란히 '레일라(Layla)'라는 노래에 담는다. 이 때가 1970년.

'난 당신의 올드 맨(조지 해리슨)이 당신을 실망시켰을 때 위로하려는 마음이었어. 바보처럼 난 당신을 사랑하게 돼 버린 거야. 당신은 나의 모든 세계를 헝클어놓고 말았어.'

방탕에 허우적거리던 그는 나중에 갱생의 과정에 들어가 신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이를 반영한 노래가 몇 년전에 TV드라마 '서울의 달'에 삽입되어 인기를 얻기도 했던 '내게 힘을 주소서(Give me strength)'다.

그러나 사랑은 그림자 속에서 빛을 내고야 마는 법. 마침내 패티로부터 반응이 왔다. 패티는 조지와 파경을 맞은 후 자신을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에릭에게로 '현명하게' 항로를 조정한다. 그 기쁨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즉각 음악에 그 흥분을 쏟아냈다. 유명한 '오늘밤 멋져요(Wonderful tonight)'가 바로 그 곡이다.

'우린 파티를 가지. 모든 이들이 내 옆에 걷는 이 아름다운 여인을 쳐다보지. 그러면 그녀는 내게 묻지. 기분이 좋냐고. 난 그럼 당신 오늘 밤 멋져요라고 말하지.'

두 사람은 79년 정식 결혼한다. 실로 9년만에 쟁취한 사랑의 결실. 식장에는 조지 해리슨도 참석해 축가를 연주했다.(이 무슨 조화?)

그러나 전설의 사랑이야기도 불과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에릭 클랩튼은 예의 주벽을 버리지 못했고 패티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치장에 너무 신경을 썼다. 미인 아내와 사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게다가 패티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결정적 약점이 있었다. 그 사이에 로리 델 산토가 불쑥 끼여든 것이다.

로리는 에릭의 여자가 될 '자격'을 입증이라도 하듯 떡하니 그의 아들(코너)을 낳았다. 자식에 목말라 있던 그의 애정이 로리와 코너에 쏠릴 수밖에. 패티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둘은 마침내 88년 이혼 도장을 찍는다.


코너를 잃을 무렵 로리와의 관계도 처음과는 달리 파열음을 냈다. 코너가 아파트에서 실족한것도 에릭과 로리가 싸움을 벌이고 관계를 정리한 뒤의 '주의소홀'에 따른 것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찔릴 것 같은 귀여운 아들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했을 때 아마도 그는 '모든게 내 탓'이라고 되뇌었을 게 분명하다. 지미 헨드릭스와 스티비 레이 본과 같은 기타동료의 사망을 비롯한 숱한 슬픔을 경험했으면서도 그는 자제를 잃고 긴 슬픔의 나락에 빠졌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친구'라는 말을 듣는 그는 종교와 정신치료에서 위안을 얻고 오랜만에 다시 잡은 통기타에서 의욕을 되찾아 감동의 소품인 '천국의 눈물'을 주조해 냈다. 에릭 클랩튼만큼 슬픔을 음악으로 훌륭하게 승화시킨 음악인도 없다. 그는 지금도 '슬픈 음악'인 블루스만을 고집한다. 지난해 내한기자회견에서도 “블루스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 인생과도 잘 맞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블루스를 통해 끊임없이 찾아든 상처를 치유하곤 했다. 스스로도 노래를 만드는 것이 '자기치료의 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에릭 클랩튼의 인생 역정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슬픔은 빛나는 기쁨과 같은 정도로 강력한 생활의 일부”라는 로댕의 말을 떠올린다. IMF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에게 왠지 그의 슬픈 음악들이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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