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칸소네

Ja Vais Seul Sur Ia Route - (Alone On The Road)

일하는 사람 2009. 12. 16. 23:18

 


 

    Ja Vais Seul Sur Ia Route .. (Alone on The Road)
    
    


    Viyhazhu Adna Iya Na Darogu vyihazhu azin iya na darogu skvozituman kremnistyi pustz blertzit notchi tzikha pustyinya vnemlet bogu I zvezda zvezdoiu gavarit nebesakh torzhestvenna I tchudna spit zimliya siyannie golubom schuto zhe mne tak bolno I tak trudna zhudu li iya tchivo zhaleiu li a tchiom ush ni zhu ot zhizni nitchivo iya I ni mne proschulova nitchutz iya ischu svabodyi I pakoiya iya b hatzel zabyitziya I zasnutzya 나는 지금 홀로 길을 가네. 돌투성이 길은 안개속에서 어렴풋이 빛나고 사막의 밤은 적막하여 신의 소리마저 들릴듯한데 별들은 다른 별들에게 말을 걸고 있네. 무엇이 나에게 그리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내가 후회할 만한 것이 있던가.. 나는 이미 삶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과거에 한점 후회도 없네. 그저 자유와 평화를 찾아 다 잊고 잠들고 싶을 뿐.. "Ja Vais Seul Sur Ia Route (나 홀로 길을 가네)" 요절한 러시아 시인 '레르몬또프(Lermontov)'의 시에 곡을 붙인 러시아 민요이다. М.Лермонтов ( 미하일 레르몬또프 1814 - 1841 ) 육군 장교이자 소지주의 아들로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가정환경의 불화로 그는 조모 밑에서 버릇 없는 아이로 길들여졌으며, 아홉살 때 했던 까프까즈 여행은 시인에게 영원한 인상을 남겼다. 열세살 때부터 바이런을 숭배하고 낭만주의적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바이런적 요소와 러시아적 요소를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조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뿌쉬낀의 언어가 절제되고 감정표출이 적다면 '레르몬또프'는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그의 시는 짧은 생이었지만 낭만주의로부터 사실주의의 고통에 이르는 길을 보람있게 통과하였다. 서정적 서사시를 자신이 완성해야 할 문학 장르로 삼았으며, 친구와의 결투로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안나 게르만'은 1936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10세 때 폴란드로 이민을 떠났고, 그 뒤 러시아와 이탈리아등에서 활동을 하며 명성을 날렸다. 1982년 46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활동 기간 동안 풍부한 성량, 그리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러시아 로망스'란 .. '러시아의 위대한 여성 보컬 시리즈'중 그 첫 작품은 '안나 게르만'의 정원에 꽃이 필 때이다. 이 여가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에게는 생소한 '러시아 로망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다면, 우리의 '가곡'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사랑과 이별, 인간의 영혼,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주제로 한 서정적인 가사와 단조의 음계로 만들어진 음악으로서, 많은 부분 가수의 목소리에 의존하면서 고전음악에 사용되는 악기가 그 뒤에 깔리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로망스'는 18세기 말경에 생겨나 귀족층의 예술로 사랑을 받아오다가 20세기 초에는 지식인층에도 많이 알려져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지만,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부르조와들의 노래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로망스가 자리했던 곳에는 사회주의 혁명의 수행과 성공을 내용을 담은 혁명 찬가들이 채워졌다. 그러나 그러한 혹독한 시간 속에서도 로망스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그 아름다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로망스의 대명사 '안나 게르만' .. 로망스를 부른 많은 여자 가수들이 있지만, '안나 게르만'은 그 음악의 깊이로 보나, 러시아 로망스에서 차지하는 그녀의 위치로 보나 '러시아의 위대한 여성 보컬 시리즈'의 첫 장을 장식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녀는 지난 1980년대에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도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을 정도로 로망스를 불렀던 당대 최고의 여가수였다. '안나 게르만'은 1936년 지금의 우즈벡키스탄의 작은 마을 우르겐치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소련정부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되어 아버지를 여읜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성이 '게르만'인 폴란드인을 아버지로 맞게 된다. 그러나 새 아버지마저도 전쟁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안나'는 어머니와 함께 새 아버지의 주검을 찾아 폴란드로 이민을 떠난다. 10살의 소녀 '안나 게르만'에게 이제 폴란드어는 모국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음악을 시작하였다. 지질학을 전공하던 그녀가 친구에게 이끌려 무대에 서게 된 것이 음악인생의 전기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몇 달 후에 열린 국제 가요제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그녀는 순회 공연을 갖게 된다. 1964년 오폴레에서 열린 제2회 폴란드 송 페스티발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고, 소련의 국영 레코드사인 멜로디아와 첫 앨범을 발매하며 모스크바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67년에 그녀는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하여 '달리다(Dalida)'와 실력을 겨루기도 했지요. 그때 당시 '달리다'가 얼마나 명성이 있었던 가수였는지 잘 아실 겁니다. '달리다'는 타고난 빼어난 미모와 감성적인 음성을 앞세워 음반시장을 장악했었잖아요. 이때부터 '안나 게르만'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더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성공의 탄탄대로를 걷던 '안나'는 대형 교통사고로 인해 거의 죽음에 이를 뻔했다. 이후 모든 음악 생활을 중단했다가 1970년에 멜로디아의 편집장인 안나 까찰리나의 권유로 당시 소련 최고의 작곡가인 알렉산드라 빠흐무또바의 '희망'을 녹음하게 되었고, 또한 러시아 로망스를 주로 노래하면서 그녀의 명성이 소련에서 되살아나게 되었다. 이렇게 음악활동을 재개한 그녀는 미국에서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지만, 1980년 호주에서 가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다시 병마에 시달리게 되어 결국 1982년에 바르샤바에서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호주에서 마지막 공연을 한뒤 2년뒤쯤이다. 그녀는 자신의 맑고 부드러운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러시아 로망스를 더욱 아름다운 장르로 승화시켰으며, 특히,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해서 러시아 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국민적 공훈 가수 알라 뿌가쵸바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예비음원]

     

    46세에 세상을 떠난 '안나 게르만'..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모든 곡들이 왜 이리 슬프고 애절한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죽음이라도 예견을 했을까요? 먼 훗날.. 아니 그리 먼 훗날은 아니겠지요. 그녀가 잠들어있는 '바르샤바묘역'에 가서 명복을 기원할 계획입니다. 멀리서 당신을 좋아하는 팬이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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