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영화 음악

[영화] Callas Forever

일하는 사람 2010. 1. 4. 16:42
마리아 칼라스가 영원히 살아남는 법



1977년, 세계적인 공연 기획자 래리 켈리(제레미 아이언스)는 록 그룹의 공연차 파리에 갔다가
칩거하고 있는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화니 아르당)를 찾아 자신의 복안을 전달합니다. 그녀의 전성기 목소리와 현재의 모습을 결합해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영상물을 만들자는 것이죠.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발하는게 정상. 하지만 켈리의 끈질긴 설득으로 칼라스는 차츰 마음을
돌리고, 마침내 무대에서는 한번도 공연하지 않았던 '카르멘'의 영화화에 동의합니다. 삶에 미련을 잃고 있던 칼라스는 차츰 생기를 되찾아갑니다. 하지만...




2002년 만들어진 영화 '칼라스 포에버'는 프랑코 제피렐리의 아쉬움 그 자체입니다.

일찌기 올리비아 핫세(허시라고 쓰면 맛이 안 납니다)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세인의 기억에 남은 프랑코 제피렐리는 사실 '영화 감독 겸 오페라 연출가(겸 셰익스피어

극 연출가)'라는 명함을 갖고 있습니다.

수많은 대형 오페라를 연출했고, '팔리아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오텔로' '라 트라비아타' 등의
오페라를 영화화했습니다. 물론 이들 영화의 거의 대부분에 테너 플라치도 도밍고가 출연했죠.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와의 인연은 더 오래되었습니다.

그가 출세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한 것은 1968년. 하지만 이미 1964년 칼라스의 코벤트 가든 공연
실황을 연출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칼라스와 제피렐리는 오랜 친구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두 사람은 1923년 생 동갑내기이기도 하죠.




당연히 꽁지머리 공연기획자 래리 켈리는 제피렐리의 분신이죠. 영화 '칼라스 포에버'가 담고 있는
1977년의 사건은 제피렐리의 상상입니다. 1977년이 칼라스가 죽은 해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죠. 뉴스를 피해 살던 칼라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은 뒤, 제피렐리는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벌인 범죄"라고 음모설을 주장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갑작스런 죽음에 분개하고 슬퍼했다는 얘기겠죠.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한판의 음모극은 아닙니다. 그녀의 사후 25년, 어느 정도 슬픔과 분노가
가라앉은 뒤 그는 '그녀가 죽기 전에 꼭 했어야 했던 일'을 생각해냅니다. 그래, 그때 내가 찾아가서 이러이러한 일이라도 좀 같이 해 보자고 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그 사람이 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아니, 가더라도 더 아름답게 갈 수 있었을텐데, 최소한 이런 후회는 남지 않았을텐데...

영화 '칼라스 포에버'에선 이런 아쉬움이 컷마다 뚝뚝 묻어납니다.




말년, 거의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칼라스는 이 영화 속에서는 샤넬의 최신

(이래야 1970년대 말 풍) 의상을 걸치고 화려한 바깥 나들이를 합니다.



목소리는 이미 망쳐졌다는 설정이지만, 그래도 웅장한 규모의 극중 영화 '카르멘'에서

다시 한번 정열을 뿜어내고(사실 극중극이지만 영화의 규모는 1970년대 오페라 영화의

선을 넘어섭니다^),



심지어 극중 돈 호세와 애틋한 로맨스를 펼쳐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니 극성스런 취재진에게 시달리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제피렐리는 이 영화를 통해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해 주고 싶었던 일을 대신 해 줍니다.

물론 영화로는 좀 그렇습니다. 드라마로서는 극적인 내용이 상당히 부족하기도 하고, 연출도

그리 깔끔하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화니 아르당의 연기를 흠잡을 데는 별로 없지만 일단

외모에서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죠.



이런 강렬한 느낌을 갖고 있는 여배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리 찾기 쉽지는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이 '칼라스 포에버'를 그대로

하나의 영화로 소비하려는 분들은 꽤나 실망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프랑코 제피렐리가 일찍 죽은 친구에게 미처 해주지 못했던 일을 대신 해

주려는, '한풀이의 장'이라고 생각하면 또 그런대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죠.

고증을 위한 치밀한 터치도 감동적입니다.



극중에서 칼라스가 두고 두고 후회하는 도쿄 공연 장면. 칼라스는 77년 죽기 전 마지막으로

역시 전성기가 끝나 가고 있던 세기의 테너 주세페 스테파노와 함께 월드 투어를 합니다.

1973년에는 유럽, 1974년에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방문했죠.

일본 투어의 마지막인 삿포로 공연 모습입니다. 

여기서 칼라스는 '라 지오콘다'에 나오는 아리아 'Suicidio!'를 부릅니다.





재현은 완벽하죠? (그런데 분명 '일본 공연'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관객은

죄다 백인들... 어떻게 된 걸까요?;;;)

영화 '칼라스 포에버'가 영화로서 갖는 유일한 장점이라면 오페라 '카르멘'의 하이라이트

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기록을 찾아 보면 칼라스는 1964년,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EMI에서 '카르멘'을 녹음했습니다. 당시 상대역은 스웨덴 출신의 테너 니콜라이 게다.

'칼라스 포에버'에 나오는 돈 호세의 목소리도 게다의 것입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칼라스는 음반을 녹음했을 뿐 무대에서
'카르멘'을 공연한 적은 없습니다. 당연히 유튜브에도 칼라스가 노래하는 '카르멘'의 동영상은 없죠. 이건 한 콘서트에서 칼라스가 라이브로 부른 '하바네라'입니다. 초상승의 기교가 필요한 곡이 아니기 때문에 대단한 절창이라는 느낌은 없지만, 강렬한 카리스마가 인상적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여러분 중의 절대 다수가 상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피렐리는 그리 충격적인

결말을 준비해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기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가 영원히 살아남는 데 있어 굳이 만년을 장식할만한 영화나 영상물이 필요할 리 없다는 건 상식에 속하는 일이죠.



물론 저도 마리아 칼라스의 세대는 아닙니다만(영화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가
래리 켈리 - 프랑코 제피렐리 - 에게 박살이 나죠^^), 여유가 되면 칼라스의 신화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칼라스 포에버'는 큰 욕심 없는 분이라면 보셔도 좋을 영�니다. 하지만 상영관이 워낙 적어서
찾아 보실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마도 관객들이 제피렐리에게 원했던 것은 굳이 칼라스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에비타' 풍의
화려하고 풍성한 일대기 에픽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미 85세인 제피렐리가 과연 그럴 근력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군요.



        1막 Libiamo libiamo ne'lieti Calici(03'16)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이중창 "축배의 노래
        Maria Callas, soprano
        Francesco Albanese, te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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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막 E' strano! E' strano! (01'27)
        이상하다 이상해



        1막 Ah, fors'e lui (03'01)
        아 그대였던가

        RAI Chorus, Turin
        RAI Symphony Orchestra, Turin
        Gabriele Santini, cond
        1953년 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