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미첼(Joni Mitchell) 모음곡 ...
1.Both Sides Now
4.Dont Worry(S.jazz radio version)
7.The Last Time I Saw Richard
Joni Mitchell / 조니 미첼 '포크의 여류작가' 조니 미첼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진솔한 내면'을 그려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1960년대 미국 지성의 상징이었던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창작의 둥지를 텄던
그녀는 산소같이 청아한 목소리로 자신의 형형색색의 내면을 노래와 시로 창조해낸 거목이다.
존 바에즈(John Baez)를 기점으로 시작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계보를 잇는 그녀는
음악 외에도 미술과 문학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보여준다.
심오한 서정시와도 같은 그녀의 노랫말은 그녀의 대표곡 'Both sides now'(1969)에서처럼
동화 속에 등장하는 꿈의 동산(?)으로 청중들을 안내한다.
여기에 자신의 앨범 자켓 그림을 손수 캔버스에 담을 정도로 화가로서의 재능 역시 주목 할 만 하다.
그녀가 지닌 이런 전천후 예술 기질은 비슷한 시기 활동하던 음악인들에게 호감을 얻으며
주디 콜린스, 데이브 반 로크,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 영, 탐 러시와 같은 포크 음악인들에게 곡을 선사했고,
특히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 영(Crosby Stills Nash & Youbg)의 베스트 앨범 (1974)의 앨범 커버를 손수 그려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음악성은 여러 번에 걸쳐 각양각색으로 개화한다.
(1969)와 (1971)에선 청아한 목소리의 순수 포크 싱어로서의 모습이었다면
(1974)와 (1976)에선 당대 트렌드로 부상한 재즈 록을 선보였다.
그리고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포크와 재즈, 팝을 넘나드는 폭 넒은 음악 지형을 형성해왔다.
1943년 캐나다 앨버타주 태생인 그녀는 어려서부터 병약한 탓에 자주 병원 신세를 졌다.
한구석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노래를 벗삼게 된 그녀는 포크 가수 피트 시거(Pete Seeger)가
내놓은 기타 교본을 통해 독학으로 기타연주를 배운다.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1965년부터 캘거리 시를 무대로 포크 싱어 생활을 시작한다.
얼마 후 정식 가수로 데뷔하기로 마음먹고 본명인 척 미첼(Chuck Mitchell) 대신 조니 미첼(Joni Mitchell)로 개명한다.
미국에 진출, 디트로이트에서 무명 연주인 생활을 하면서 차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며
'사랑의 여름'으로 기억되는 1967년,모던 포크의 산실로 통하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입성한다.
미디어를 통해 그녀의 노래가 소개되기 시작했고 리프라이즈(Reprise) 레이블 귀에 걸려든
그녀의 섬세한 음악성은 정식 앨범계약으로 이어진다.
포크 록 밴드 버즈(Byrds) 출신 데이빗 크로스비(David Crossby)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그녀의 첫 앨범 (1968)은 비범한 작곡 감수성을 드러내며 주변 음악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이후 다른 포크 싱어들의 입을 통해 노래가 불려지면서 주디 콜린스(Judy Collins) 노래로 더 유명한 'Both sides now',
영국 출신 포크 밴드 페어포트 컨벤션(Fairfort Convention)의 'Eastern rain'등이 차트에 진입한다.
인기 작곡가 반열에 오른 그녀는 이에 힘입어 두 번째 앨범(1969)를 톱40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대표작이기도 한 'Both sides now', 'Chelsea morning'이 잔잔한 호응을 얻는다.
이듬해 한층 팝 성향을 배가시킨 (1970)에선 흥겨운 포크 넘버 'Big yellow taxi', 크로스비 스틸,
내쉬 & 영(Crossby, Still, Nash & Young)의 앨범(1970)에서도 선 보였던 'Woodstock' ,
탐 러시의 곡으로 더 유명한 'The circle game'을 차트에 진입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이어 발표된 앨범 (1971)는 내면의 어둡고 우울한 감성을 포크 예술로 승화시킨
그녀의 대표작이자 캐롤 킹의 (1971)와 함께 70년대 싱어 송 라이터의 음악성을 대변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수록곡들 중 'Carey'처럼 양지에서의 온화함도 감지되지만 'All I want', 'My old man', 'California'를
위시한 대부분의 곡들은 지극한 외로움과 슬픔이 서려있는 어두움의 정서로 일관된다.
이런 그녀의 '우울한 자기고백'은 음악의 중심이 '자신'에게 있음을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
에서 보여준 놀라운 음악적 변신은,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이듬해 발표된 (1972)에선 그녀의 음악성이 포크에서 차츰 '재즈 팝'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테너 색스폰 연주자로 참여한 톰 스코트(Tom Scott)의 연주가 들리는 그녀의 첫(?) 히트 싱글
'You turn me on I'm a radio'로 향후 그녀의 음악에선 어쿠스틱 기타의 상큼함만큼이나
색스폰의 '째지'(Jazzy)한 감성이 중요해지고 그 결과 나온 앨범이 또 하나의 명반으로 추대되는 (1974)이다.
The Big Sur Folk Festival, Eselan, CA ~ June, 1969 어느덧 그녀는 '포크의 작가'에서 '재즈 디바'로 변신해 있었다.
청아함에 더해 그녀의 보컬은 오프 비트의 통통 튀는 리듬감이 가해졌고,
재즈로의 여정을 가능케 해준 톰 스코트를 비롯, 래리 칼튼(Larry Carlton), 조 샘플(Joe Sample)과 같은
당대 실력파 재즈 세션 맨들이 앨범 크레디트에 빈번히 등장한다.
수록 곡 'Help me', 'Free man in Paris', 'Raised on Robbery'가 모두 차트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둔 이후
음악의 무게중심은 완연히 재즈로 향한다. 아방가르드 재즈를 통한 실험성 있는
사운드가 화제를 모은 (1975), 베이스 비르투오조 자코 패스토리우스(Jaco Pastorius)가 참여해
주목받은 (1976), 베이스의 전설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의 음악성에 대한 오마쥬 (1979),
그리고 그녀의 '재즈 시대'를 결산하는 더블 라이브 앨범 (1980)를 통해 재즈 록(Jazz rock)을 향한 그녀의 창작열은 식을 줄 몰랐다.
특히 는 팻 메스니, 라일 메이즈, 자코 패스토리우스, 돈 앨리어스, 마이클 브레커와 같은
당대 재즈 퓨전계의 쟁쟁한 스타들이 그녀의 든든한 백업 밴드로 참여하며 그녀의 보컬만큼이나 손색없는 연주를 들려준다.
1982년, 로 그녀는 초기의 포크 팝으로 되돌아온다. 앨범에선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You're so square) Baby, I don't care'을 리메이크 해 'You turn me on I'm a radio' 이후 그녀의 두 번째 히트 싱글이 된다.
얼마 후 동료 베이시스트이자 엔지니어였던 래리 클라인(larry Klein)과 결혼,
이후 발표되는 그녀의 앨범에 공동 프로듀서로 활동한다. (그러나 이 둘은 결국 1993년 파경을 맞는다)
신스 팝(Synth pop)이 라는 80년대의 새로운 감수성에 매력을 느낀 그녀는
1988년 앨범 에서 신시사이저의 모던함이 배어나는 포크 음악을 선보이며,
윌리 넬슨, 피터 가브리엘, 빌리 아이돌, 톰 페티 등이 게스트로 참여 눈길을 끌었다.
90년대 들어 발표한 작품들인 (1991), (1994), (1998)들은 예전의 그녀가 보여준 발군의 창조력엔 못 미치지만
연륜에 걸 맞는 잔잔한 포크 팝과 스탠더드 곡들로 꾸며진다.
1996년엔 베스트 앨범 와 를 발표하고, 2000년 에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품격 있는 스탠더드 보컬주자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