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영화 음악

[Tara's theme]Gone with the wind(1939)

일하는 사람 2011. 6. 6. 15:11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뜬다!
Think tommorrow, tommorrow is another day!
 
 
거짓말 보태서 한 스무번은 본 영화, 책까지 밤새워 독파  

오직 '비비안리' 만이  스칼렛 오하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영화입니다.

 

이 책을 쓴 마가렛 미첼여사는 필력을 소진한 나머지 더 이상의 집필을 안했다고 합니다. 

 

[비비안리 Vivian Mary Hartley ,1913~1967]

 

인도태생으로 영국인
19세에 31세의 허버트 리 홀만과 결혼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후 1940년 우상인 로렌스 올리비에와 결혼,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로 결핵, 유산등으로  힘든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여배우와 바람이 나는 바람에 결국 결혼 20년만에 이혼,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7년 7월7일 불과 55세를 일기로 사망
 
그후로 한달 후인 8월 15일 성 마틴 왕립교회에서 이루어진 그녀의 추도식에는 생전, 그녀가 사랑했던 세명의 남자 .
첫 번째 남편 리, 두 번째 남편 로렌스 올리비에, 마지막 연인이었던 잭 메리벨. 이 참석하였고,
로렌스 올리비에는 '다시 사랑하고 싶은 영혼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쁜녀석 같으니라구!

 

 
원 제 : Gone With The Wind
감 독 : 빅터 플레밍.
주 연 : 비비언 리, 클라크 케이블,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레슬리 하워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히스토리] 

19세기말 미국. 남북전쟁으로 짓밟힌 남부 조지아주를 무대로 격렬하게 살아간 여인 스카렛 오하라(Scarlet O'Hara)의 이야기를 그린 10여 년만에 완성했다는 마가렛 미첼 여사의 동명소설을 영화한 상영 4시간의 불후의 명작이다.
 
600만 달러의 제작비는 당시로서는 전대 미문의 엄청난 것이며, 아카데미 작품(데이빗 셀즈닉), 여우주연(비비안 리), 여우조연(헤이티 맥대니얼), 감독(빅터 프레밍), 각색(시드니 하워드), 촬영, 실래장치, 편집, 특별상 등 11개 부문을 휩쓴 대작이다.
 
1965년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 나오기까지 30년간 세계 영화 흥행수익 1위의 자리를 30년 가까이 지켰다. 그러나 그동안 화폐가치가 6배나 떨어졌다는 사실을 반드시 감안해야만 한다.

무대는 남군 최후의 거점이었던 애틀랜타와 오하라 가문의 타라 농장을 오간다. 미첼 여사는 오직 이 한편만을 쓰고는 자신의 모든 것을 여기에 다 쏟아넣었기 때문에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 후로는 일체 붓을 들지 않았다.
 
36년에 출간되어 베스트 셀러가 된 이 책의 영화화권을 당시로서는 거금인 5만달러에 사들인(후에 다시 5만달러를 추가로 지불)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은 남자주인공 레트 버틀러 역으로는 원작자의 추천에 의해 클라크 게이블을 일찌감치 결정해놓고, 여주인공 스칼레트 오하라 역의 배우를 찾지 못한 채 일단 촬영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촬영장에 들른 영국출신의 무명 여배우 비비안 리를 스칼레트로 결정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두 주연의 역사적인 명연과 함께 전 배역진의 참신한 조화와 획기적인 칼라촬영, 헐리우드 최고의 각본가 7명과 셀즈닉 자신까지 참여한 완벽한 시나리오, 맥스 스타이너의 기념비적인 음악, 390만달러 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거액의 제작비 등이 한데 모여서 애틀랜타 역의 남군 부상병들 장면, 애틀랜타 대화재속의 극적인 탈출장면, 레트와 스칼렛의 폭발적인 러브 씬, 멜라니 역의 하빌랜드가 보여준 은근한 강인함 등 수많은 인상적인 명장면들을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죠지 큐커(George Cukor)를 감독으로 촬영을 시작했으나, 의견 차이로 인해서 3주만에 관두고 말았다. 그래서 <오즈의 마법사>를 막 끝낸 빅터 플레밍(Victor Fleming)에게 메가폰이 넘어갔다.
 
플레밍은 마지막 1주일을 남기고 과로로 쓰러지는 바람에 나머지는 샘 우드(Sam Wood) 감독이 찍었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타라의 테마(Tara's Theme)'를 비롯해서 영화사에 불멸의 명곡을 남긴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이 음악상을 놓친 것.
 
지금은 70밀리 화면에 옮겨져서 스테레오 음향을 곁들여 계속 재공개가 되고 있다. 엄청난 방영권료와 셀즈닉의 고집 때문에 TV에는 등장하지 못하다가, 1976년에야 처음으로 CBS에서 이틀간에 걸쳐 방영이 되었다. 이때 시청률 47.6%라는 기록적인 인기를 얻었고, CBS는 1978년부터 20년간 20회까지 방영할 수 있는 권리에 3,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1985년에 MGM의 필름 보관소를 사들인 테드 터너(CNN 사장)는 2년간에 걸쳐 25만 달러를 들여 필름을 완전히 복원시켜, 1989년에 공개 50주년 기념으로 재공개를 해 다시 화제가 되었었다.
 
'내일 나는 그이를 되찾을 방법을 생각해 낼 것야, 어쨋든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니깐(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스카렛 오하라의 말로서 이 명작은 그 끝을 맺는다. 이 영화도 약 50년이 지나 속편 제작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편 이 영화는 자막에 나는 인물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각본에는 시드니 하워드 외에, Ben Hecht, John Lee Mahin, David O. Selznick, John L. Balderston, Charles MacArthur, Edwin Justus Mayer, Winston Miller, Donald Ogden Stewart, Jo Swerling, John Van Druten, F. Scott Fitzgerald 등이 비공식적으로 참가하였다. 또, 음악도 막스 스테이너 외에 Adolph Deutsch, Hugo Friedhofer, Heinz Roemheld가 있다
 
 
[명대사]
'남북전쟁 전의 미국 남부. 그 곳은 신사도와 목화밭으로 상징되는 곳이었다. 이 아름다운 지방은 기사도가 살아있는 마지막 땅으로, 용감한 기사와 우아한 숙녀, 지주와 노예가 함께 존재하는,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꿈처럼 기억되는 과거가 오늘로 살아있는 곳. 문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일까'
 
'그를 이대로 보낼 순 없어. 그를 돌아오게 할 방법을 생각해야지, 오 지금은 생각할 수 없어, 그랬다간 미칠 것만 같애. 그래 그건 내일 생각하자. 하지만 생각해 내야하는데, 꼭 생각해 내야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지. 정말 중요한 게 뭘까. 그래. 타라, 오 내 고향, 타라에 가자. 거기에 가면 그이를 되찾을 방법이 생각날 꺼야.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테니까' - 스칼렛 오하라
 

 

 

 

 
왼쪽이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영화 '레베카'로 유명한 조앤 폰테인의 친언니입니다. 사이는 별로 안좋았지만...  
 
 

클라크 게이블! 참으로 얼굴만 봐도 사랑에 빠지고 싶은(여자입장에서) 로맨틱 배우입니다.

불행히도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은 못받습니다. 포커스는 이미 비비안리에 맞춰져 있었기에... 

 

북부군에 의해 모든 것이 파멸되고 정신이상까지 생긴 스칼렛의 부친  제랄드 오하라입니다.

마음이 가장 아팟던 부분중의 하나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여운이 많이 남는 배우중의 한사람  해티 맥다니엘

흑인최초로 아카데미상을 받게 됩니다. 

 

 
 
 
 
 

 

 

 

'내일 나는 그이를 되찾을 방법을 생각해 낼 것야, 어쨋든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니깐'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뜬다!

Think tommorrow, tommorrow is another day!

 

 

 

[Tara's theme]Gone with the wind(1939)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