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째즈&블루스

KEITH JARRETT / STANDARDS LIVE (ECM 1985)|

일하는 사람 2010. 7. 2. 10:09

*참고*  HEP (재즈연주자가 연주에 몰입 했을때 지르는소리)

 Falling In Love With Love

 Too young To Go Steady
 
  Stella By Starlight
 
  

                      

  KEITH JARRETT - STANDARDS LIVE 
Keith Jarrett(Piano), Gary Peacock( Bass), Jack DeJohnette(Drums) 
 
 01.    Stella by Starlight (Washington/Young) - 11:15
02.    The Wrong Blues (Engvick/Wilder) - 8:03
03.    Falling in Love With Love (Hart/Rodgers) - 8:44
04.    Too Young to Go Steady (Adamson/McHugh) - 10:10
05.    The Way You Look Tonight (Fields/Kern) - 9:31
06.    The Old Country (Adderley/Lewis) - 6:36
 

오른손과 왼손의 불협화음, 거칠게 몰아치는 연주, 때론 부드러움의 세계에서 온화한 미소로 관중들을 향해 답례를 할 때 우리는 키스 자렛의 피아니즘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정통 재즈에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지고 재즈 세계에 들어온 마이다스의 손을 지닌 연주인 키스 자렛은 대부분의 연주인들 스토리처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3세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여 7세에는 자작곡을 연주할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말을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위와 같은 말들이 나오는 것은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가 아닌가 한다.
10대 시절에는 피아노 경연 대회에 나가 상을 타며, 클래식 부문에서는 탁월한 연주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재즈의 매력에 깊이 빠지기 시작한 10대중반부터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를 두루 섭렵하게 되었고, 퍼커션, 비브라폰, 파이프 오르간, 크라비코드, 색소폰 등을 배우는 열정을 보였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팀을 조직해 연주를 한 시기는 1962년경으로 피아노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보스톤에 위치한 버클리로 가 그곳에서 트리오를 조직 연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었다. 버클리에 도착한 키스 자렛은 클래식보다는 재즈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재즈의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즉흥 연주의 매력이 깊이 빠지게 되었다. 보스톤에서 트리오 연주 생활을 한 키스 자렛은 그곳에서 활동하던 토니 스콧(Tony Scott), 로랜드 커크(Roland Kirk) 등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재즈의 세계 외에도 다른 재즈 세계가 있다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으로 한동안 그들과 함께 연주를 한 적도 있다.

65년경 버클리 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가장 재즈가 활발하게 움직이던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키스 자렛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팀에 소속하게 된다. 바로 하드 밥 대학이라 할 수 있는 진정한 재즈 대학 아트 블래키 재즈 메신저에 영입된 것. 키스 자렛은 일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아트 블레이키가 이끄는 메신저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즘으로 이름을 떨친 호레이스 실버, 바비 티몬스 등이 1기와 2기 피아노 주자를 지낸 자리여서 아무래도 키스 자렛에게는 큰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무거운 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호레이스 실버나 바비 티몬스의 연주는 하드 밥의 대명사이며, 펑키 재즈 피아노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사람들이다. 이런 연주인들이 거쳐간 메신저에 감수성이 예민한 감성주의 피아니스트를 영입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역시 자신의 스타일과 메신저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서로 다른 노선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키스 자렛은 몇 개월만에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의 솔로 활동은 당시로서는 특별함이 없는 평이한 연주와 그저 그런 연주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클럽 연주인에 불과했다.

1960년대 후반까지 키스 자렛은 솔로 연주인으로서 특별히 강한 개성과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며 세월을 보내었고, 결국은 다시 음악 수업을 받기에 이른다. 그 음악 수업이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비슷한 연주인의 밴드에 들어가 연주를 하며 재즈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1966년에 찰스 로이드(Charles Lloyd)의 쿼텟에 들어가 함께 떠난 유럽 순회공연에서 키스 자렛은 프리 재즈 스타일의 음악으로 유럽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일부 연주인들이 그러했듯이 키스 자렛 역시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개성파 연주인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미국의 클럽에서 연주되는 전통 재즈보다는 유럽적인 느낌 즉, 재즈와 클래식의 교묘한 결합이나 혹은 아방가르드적인 색체가 가미되어있는 프리 재즈 스타일을 즐겨들었으며, 유로 재즈를 미국의 전통 재즈와 나란히 설 수 있게 하였다. 이렇듯 유럽에서 먼저 성공을 거둔 키스 자렛은 미국으로 돌아와 또 다시 뉴욕의 재즈신에서 활동을 재기하였고, 1969년 당시 가장 화려한 음악 인생을 살고 있는 마일즈 데이비스 콤보에서 2년간 사이드 맨으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당시 키스 자렛이 활동 할 때의 음반은 아쉽게도 녹음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60년대를 마감한 후 70년대로 들어와 키스 자렛은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되는데 바로 키스 자렛 사운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ECM으로 소속사를 옮겨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럽 투어 중 ECM사로 소속사를 옮긴 뒤 첫 작품으로 72년 11월에 첫 솔로 피아노 작품 [Facing You]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서 키스 자렛은 'In Front', 'Larenne'등의 지극히 서정적인 곡들을 연주하여 당시의 재즈계에 이변을 일으켰다. 당시는 퓨전 재즈가 재즈신의 가장 맨 앞자리에서 활동을 하던 시기로서 이러한 퓨전 재즈 일변도에서 서정적인 재즈 연주를 들고 나왔다는 건 마니아들에게 새롭게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1960년대에 간간이 찰리 헤이든과 폴 모션 두 멤버를 모아 트리오 형식으로 연주한 곡들이 [Somewhere Before]란 타이틀로 1968년 아틀란틱에서 발매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분히 실험적이고 비정규적인 세션이었으므로 본격적인 그의 솔로는 [Facing you]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그는 임펄스와 ECM을 통틀어 60매에 가까운 앨범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그는 몇몇 동료들과 줄곧 손을 잡고 공동작업을 해왔으며 함께 병행한 솔로 프로젝트는 컨템포러리 재즈계를 빛낸 역작으로 간주되어 왔다.

시기적으로 1960년대는 수업기에 해당하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 솔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다채로운 포맷을 시도했다면, 1980년대에는 클래식까지 손을 댄 것이 이채롭다. 그리고 이제 1990년대에 오면 이런 다양한 경력을 총체적으로 규합하고 있다. 1972년부터 그는 유럽을 중심으로 one And only 솔로 피아노 콘서트를 행하였다. 그중에는 '73년에 녹음된 3장짜리 음반 [Solo Concert]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앨범은 발표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운비트, 스윙저널, 뉴욕 타임스 등 세계 매스컴이 격찬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74년 최고의 음반으로 손꼽히는 행운을 안았다. 이에 힘입어 키스와 맨프레드 아이햐는 '75년 다시 솔로 콘서트 녹음을 감행하였다. 5회에 걸쳐 행해진 콘서트 중에서 서독 라인 지방 쾰른에서의 콘서트를 앨범화한 것이 [Koln Concert]이다. 이 앨범은 키스의 솔로 작품으로[Facing You], [Solo Concert]에 이어 3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Facing You]와 그 이후의 솔로 작품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Facing You]는 다분히 예언적인 것으로 어디까지나 일회한에 한한 것이었다. 이에 비하면 브레맨과 로잔느에서의 콘서트를 수록한 [Solo Concert] 이후의 것은 '72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솔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결심한 이후의 것이다. 때문에 그의 솔로 활동이 정규 그룹(American과 Europian Quartet) 활동과 병행 하여 행해졌던 것은 매우 흥미깊은 일이다.

키스 자렛의 음악적 특색이라면 포크적 냄새와 프리한 감각, 자기도취적이기까지한 로맨티시즘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앨범에선 라이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그의 특징이 잘 표현되고 있다. 그의 솔로 연주는 이른바 흔히 말하는 솔로 피아노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다. 테마와 즉흥연주와의 일체감, 스케일의 크기에 있어서도 키스의 솔로 연주는 독자성을 자랑하고 있다.

그는 음악과 더불어 피아노라는 악기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자신의 분신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유자재의 감정을 표현해내고 있다. 우아하게 혹은 미친듯이 격정적으로 연주함으로써 그의 연주세계는 듣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연한 [In The Light](73), 교회에서 올갠 연주를 담은[Hymns-Spheres](76) 등의 앨범도 발표하였는데, 재즈적인 요소부터 현대음악, 클래식적인 것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전개하였다.

'80년대 들어서자 키스는 정규 그룹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개인의 솔로 피아노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83년부터는 게리 피콕(Gary Peacock), 잭 디조넷과 같이 트리오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세 사람은 '77년에 녹음된 게리 피콕의 리더작 [Tales Of Another]를 공연한 멤버들로 그때의 녹음이 발단이 되어 모인 것이다. 이 트리오는 'Standards'로 불리우기도 했는데 이름 그대로 옛부터의 스탠다드 곡을 새롭게 연주하여 들려주었다. 특히 라이브 콘서트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여 '80년대 최고의 피아노 트리오라는 평가를 얻었다. [Standards Live]는 그들의 첫 라이브 음반으로 스테이지에서 더 빛을 발하는 그들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또 [Standards Vol.1], [Standards Vol.2]라는 스튜디오 녹음 음반을 발표, 키스의 솔로 앨범 이상의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이후 화려한 라이브를 하며 활동을하던 키스 자렛에게 갑자기 불행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만성 피로 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으로 인하여 한동안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시기가 왔다. 90년대를 대부분 요양을 하며 보낸 키스 자렛은 꾸준한 치료 덕분에 재즈신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고, 얼마전 트리오로 뭉쳐 화려한 재기의 성공을 보여준 앨범 [Whisper Not]은 '역시'라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하고 있다.

'천재'라는 수식어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바로 이런 인물, 키스 자렛 같은 아티스트에게 어울리는 단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