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雁/자료상식

단기 계산법 외~

일하는 사람 2010. 2. 26. 18:12

단기 게산법에는 원년을 더하느냐 빼느냐에 따른 의견이 분분 합니다~!!~*

단군왕검께서 처음 조선을 여신 해가 B.C.2333년입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계산을 하면
올해(A.D.2007년)는 단기4340년 2333+2007=4340 이 되지요

내년 2008년은 2333+2008=4341년이 됩니다~~~!!

참고로 아래 단기, 공기, 불기,주체표기 계산법도

참고 바랍니다~~!!!, ^&*~~~

 

단기, 공기, 불기, 주체표기 계산법

 

단군이 개국하여 왕위에 오른 해를 기원으로 하는 것이 단기

우리 나라에서 자유당 정권 때 잠시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지금도 단군을 신격화하는 일부 종교 단체에서는 단기를 쓰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개천절 때,  많이 거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는 것이 서기

기독교 국가가 많은 유럽과 미국 등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많이 쓰고 있다.

그리스도 탄생 이전을 BC, 탄생 이후를 AD라고 구분한다.

 

공자가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는 것이 공기

공기를 공식적인 연호로 사용하는 국가는 없으나

공자를 숭모하는 유교(유림, 향교)에서 사용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는 것이 불기

불멸기원()을 줄인 말이다.

불교와 불교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는 것이 주체표기

북한의 공식 연호이다. 

금강산에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이 주체 표기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주체 93년(서기 2004년)을 서기 1993년인 줄로 착각하여,

10년 전에 만든 물건을 파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하는 일도 잦다는 일화가 있다.

 

서기와 비교한 계산법은 다음과 같다.

 

단기서기 + 2333 --- 예) 20007년은 2007+2333 = 4340년

공기서기 +551 ---예)  2007년은 2007+551 = 2558년

불기서기 + 554 ---예) 2007년은 2007+554 = 2551년

주체표기서기 - 1911 ---예) 2007년은 2007 - 1911 = 96년

 

배달민족의 연대

 

환국 (桓國, B.C. 7199~3898) 환인천황시대,   7대 3301년,

배달국(培達國, BC. 3898~2333) 환웅천황시대, 18대 1565년,(신시)

         14대 자오지환웅(치우천왕,BC2748~2598,蚩尤天王)

고조선(古朝鮮, BC. 2333~108?) 단군왕검시대, 47대 2096년,


북부여,남삼한,최씨 낙랑국,동옥저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야시대,

대진국,통일신라,

고려(高麗,서기 918~1392)   475년,

조선(朝鮮,서기 1392~1910)  519년,

 

임시정부,(1919~1945)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총 역년 9202년, 환기9206년, 단기4340년(서기2007년)

 

환국(桓國) 환인 계보 (7대, 재위년수 : 3,301년)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B.C.7199)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任)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신시배달국 환웅 계보 (18대, 재위년수 : 1,565년)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86, B.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93, B.C.3511, 115세)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거련 환웅(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양운 환웅(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고 환웅(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단군조선 단군 계보 (47대, 재위년수 : 2,096년)

 

가. 송화강 아사달(하얼빈)시대: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1대 단군 임검(王儉, 93, B.C.2333)
2대 부루 단군(扶婁, 58, B.C.2240, 태자)
3대 가륵 단군(嘉勒, 45, B.C.2182, 태자)
4대 오사구 단군(烏斯丘, 38, B.C.2137, 태자)
5대 구을 단군(丘乙, 16, B.C.2099, 羊加)


6대 달문 단군(達門, 36, B.C.2083, 牛加)
7대 한율 단군(翰栗, 54, B.C.2047, 羊加)
8대 우서한 단군(于西翰, 8, B.C.1993, ? )
9대 아술 단군(阿述, 35, B.C.1985, 태자)
10대 노을 단군(魯乙, 59, B.C.1950, 牛加)


11대 도해 단군(道奚, 57, B.C.1891, 태자)
12대 아한 단군(阿漢, 52, .C.1834, 牛加)
13대 흘달 단군(屹達, 61, B.C.1782, 牛加)
14대 고불 단군(古弗, 60, B.C.1721, 牛加)
15대 대음 단군(代音, 51, B.C.1661, ? )


16대 위나 단군(尉那, 58, B.C.1610, 牛加)
17대 여을 단군(余乙, 68, B.C.1552, 태자)
18대 동엄 단군(冬奄, 49, B.C.1484, 태자)
19대 구모소 단군( 牟蘇, 55, B.C.1435, 태자)
20대 고홀 단군(固忽, 43, B.C.1380, 牛加)


21대 소태 단군(蘇台, 52, B.C.1337, 태자)

나. 백악산 아사달시대 : 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22대 색불루 단군(索弗婁, 48, B.C.1285, 욕살 고등의 아들로 우현왕을 거쳐 단군으로 즉위)
23대 아홀 단군(阿忽, 76, B.C.1237, 태자)
24대 연나 단군(延那, 11, B.C.1161, 태자)
25대 솔나 단군(率那, 88, B.C.1150, 태자)


26대 추로 단군(鄒魯, 65, B.C.1062, 태자)
27대 두밀 단군(豆密, 26, B.C.997, 태자)
28대 해모 단군(奚牟, 28, B.C.971, ? )
29대 마휴 단군(摩休, 34, B.C.943, ? )
30대 내휴 단군(奈休, 35, B.C.909, 태자)


31대 등올 단군(登 , 25, B.C.874, 태자)
32대 추밀 단군(鄒密, 30, B.C.849, 아들)
33대 감물 단군(甘物, 24, B.C.819, 태자)
34대 오루문 단군(奧婁門, 23, B.C.795, 태자)
35대 사벌 단군(沙伐, 68, B.C.772, 태자)


36대 매륵 단군(買勒, 58, B.C.704, 태자)
37대 마물 단군(麻勿, 56, B.C.646, 태자)
38대 다물 단군(多勿, 45, B.C.590, 태자)
39대 두홀 단군(豆忽, 36, B.C.545, 태자)
40대 달음 단군(達音, 18, B.C.509, 태자)

 
41대 음차 단군(音次, 20, B.C.491, 태자)
42대 을우지 단군(乙于支, 10, B.C.471, 태자)
43대 물리 단군(勿理, 36, B.C.461, 태자)

다. 장당경(開原) 시대 : 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 (B.C.425∼B.C.238 : 188년간)

44대 구물 단군(丘勿, 20, .C.425, 욕살) :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고치고 三韓을 三朝鮮으로 개정
45대 여루 단군(余婁, 55, B.C.396, 태자)

46대 보을 단군(普乙, 46, B.C.341, 태자)
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58, B.C.295, 대장군)

 

계해 58년(B.C.238) 단군조선을 폐관하고, 이후 6년간 오가(五加)들이 함께 다스린다.

 

동이족의 뿌리

 

잃어버린 역사 

 

흔히 한민족을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민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의 역사가 왜 5천년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나 뚜렷한 논리가 없다.

이것은 우리 역사의 근원인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조선檀君朝鮮으로 이어지는 상고시대의 계보를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의 뿌리인 환단桓檀의 역사를 잡초밭에 묻어두고서 역사를 논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고대 환단시대로부터 우리민족은 고도의 정신적 이념과 철학을 갖추고 문무를 겸비한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는 '군자국君子國'이라 불렀으며, 큰 활(大 + 弓 = 夷)을 잘 다루는 민족이라 하여

여러 사서와 문헌에서 동이東夷, 구이九夷,  이적夷狄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한민족의 장려했던

고대역사를 잃어버린 것은 우리민족의 혼을 잃어버린 것이나 진배없다.

 

  그결과 오늘날 한국의 사학계는 중국의  사서에서 왜곡되고 날조된 부분만을 취하고, 진실로 취해야 할 부분은

반도사관半島史觀에 물든 자신들의 모순된 역사관점으로 하여 모두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역사학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  일반국민들도 역사에 관한한 왜곡된 진실을 알고있는 점에서는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 일부 중에는 유태인의 족보는 훤하게 꿰고 있으면서 본인 가문의 뿌리,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의 근원에 관해서는

도외시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심지어는 우리민족의 뿌리가 유태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비롯되었다던지,

현세의 세계인들은 모두 대홍수 이후 노아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이것은 거창하게 민족 운운할 것도 없이 자신들의 부모, 조부, 그리고 그 윗대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닌가. 일가一家의 계보를 사다리 타듯이 타고 올라가 보면 분명히 그 정점에는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학자들, 사서와 문헌까지도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외국학자들과 문헌이 인정한 민족의 역사

 

①일본학자 오향청언(고쿄 기요히코)는 "사마천의 사기 25권은 단군조선이 중원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작업을 벌인 것이다.

漢나라의 漢이라는 국호자체도 옛날 삼한조선의 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간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②대만대학의 서량지 교수는 역법, 춤추는 법, 활 쏘는 법, 만드는 법 등을 동이족에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③위서魏書(북제北齊때의 역사서)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으니, 이는 요堯임금과 같은 시기였다." 라고 하였다.

 

④진서晉書(당 태종때 편찬한 동진과 서진의 사서)에 이르기를 "비리국裨離國은 숙신肅愼의 서북쪽에 있는데 말을 타고

200일을 가야한다. 양운국養雲國은 비리국에서 말을 타고 또 50일을 가야 한다. 구막한국寇莫汗國은 양운국에서

또 100일을 가야 하며, 일군국一群國은 구막한국에서 또 150일을 가야 하는데,

이를 계산해 보니 숙신에서 5만여 리를 가야 한다" 라고 하였다.

 

⑤후한서後漢書에 이르기를 "동방을 동이東夷라고 하는데, 이夷는 근본을 말한다. 말하기를,

인자하여 만물이 생生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근본은 땅에서 나온다. 때문에 천성이 유순하며 도로써 제어하며,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에 이르렀다." 라고 하였다.

 

⑥논어의 자한子罕편에 공자가 구이九夷의 땅에 가서 살고자 하니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누추할텐데 어떡하시겠습니까?"

공자 왈 "군자가 거처하는 곳인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⑦후한서의 동이전東夷傳에 이르기를 "이른 바 중국에서 예禮를 잃었을 때에는 사방의 동이東夷에게서 구하였다." 라고 하였다.

 

⑧고사변古史辯(현대 중국의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사서)에 이르기를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제준(은나라에서 섬기던 동방의 상제), 제곡(제곡고신.五帝의 한사람), 제순(순임금),

소호(소호금천.五帝의 한사람), 그리고 설(은나라 탕왕의 조상)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라고 하였다.

 

⑨사기史記에 이르기를 "황제黃帝로부터 순임금, 우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성姓이며,

그들이 세운 나라의 호칭만 달랐을 뿐이다." 라고 하였다.

 

⑩중국의 서량지徐亮之 교수는 <중국사전사화>에서 "역법易法(주역)은 사실 東夷가 창시자이며, 소

호(소호금천. 五帝중의 한사람)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세석기細石器 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근처이다.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신농(三皇중의 한사람) 등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 라고 하였다.

 

⑪한서漢書의 지리지地理志에 이르기를 "치우 천왕의 능이 산동성 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에 있다" 라고 하였다.

<사기>의 집해集解에는 "치우의 무덤은 동평군 수장현 함향성 안에 있다.

그 높이는 7장丈으로 백성들이 늘 10월에 제를 올린다." 라고 하였다.

 

⑫포박자抱朴子에서 치우천왕의 청구국과 관련하여 이르기를 "옛날에 황제黃帝가 동쪽으로 청구靑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 자부紫府선생을 만나 뵙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으며 이로써 만신萬神과 어울렸다." 라고 하였다.

⑬後漢의 채옹은 <독단獨斷>이라는 문헌에서 "천자天子라는 호칭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생각했기 때문에 천자라고 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일제에 의한 왜곡

 

①"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 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무능,악행을 들추어내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들을 경시하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라.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조선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건인 것이다."

 

일제는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악랄한 정책을 이행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전통문화와 역사의 말살을 꼽을 수 있다.

일제는 식민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민속조사를 실시하고 우리의 민속신앙들을 미신으로 몰아세웠다.

 

②우리의 민속신앙은 일제의 조선에 대한 반일본화 작업에 있어 방해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다각적인 탄압을 진행하는 한편,

학무국에서는 신사.신도 정책을 펴나가 각급학교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의무화했으며, 사회과에서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미신(迷信이라는 말은 이때부터 쓰이기 시작)으로 간주하는 사회 교화운동을 전개하였다.

 

③일제의,사서 20여만권 소각과 더불어 시작된 조선사의 편찬은 '공명,정확'한 사서의 편찬을 위해 사료가 필요하다는 구실로

중추원을 앞세워 전국적인 사료수색을 감행하였는데, 1차로 1910년 11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37년까지

이루어졌고 압수대상 서적은 단군 관계 조선 고사서, 조선지리, 애국충정을 고취하는 위인전기. 열전류 및 미국의 독립사까지

포함되었다. 조선 세종때부터 단군 관계 사서를 수집하여 장서각 및 규장각에 보관하였다는 기록을 보아 이들 사서 가운데는

귀중한 단군 관계 고사서가 많았으리라 추측된다.

 

※ 조선총독부 취조국은 단군조선 등 한국사를 왜곡편찬하는데 필요한 일부서적만 남기고 모두 불태웠다.

 

④또한, 일제는 삼국유사 대목을 조작해서 고대 한국이란 나라의 실제를 슬그머니 한 개인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

즉, 환국-배달국-단군조선 7천년의 역사를 환인→환웅→단군 3대의 이야기로 축소해 버렸다. 예를 들면,

 

▷ 원본 : 今有桓國(옛날에 환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 조작 : 今有桓因(옛날에 환인이란 사람이 있었다)

 

⑤일본이 단군을 없애기 위해 내세운 이론적인 이유로 첫번째는 신화라는 이유, 두번째는 고증(유물)이 없다는 이유,

세번째는 문헌(사료)가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사실 신화라는 말이 붙는 것은 전부 실존인물이다.

 

※ 김해김씨 시조 수로왕의 난생신화, 박혁거세의 난생신화, 고주몽 신화, 석가는 어머니 옆구리에서 탄생,

노자(老子)는 80년만에 탄생,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

 

⑥물증문제에 대해서 고고학은 부재료일 뿐이다. 역사학자가 못 밝혀낸 부분에 대해 유물로서 보완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고사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 또는 신화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단군릉이 평양에 있다는 것은 역사에 나와있는 사실이다. 단군릉에서 출토된 왕관을 감정(56회) 결과,

5,011년으로 결론이 나왔다.

 

※ 1926년 동아일보기사 : 모금운동하여 제사를 지냈다

 

⑦그리고 문헌문제에 대해서 정사(正史)는 국가가 만든 것으로 오히려 권력에 의한 조작의 가능성이 높다.

야사(野史)는 개인이 만든 것이지만 예를 들어 족보를 개인이 만든 것이라고 부정할 수 있는가? 위서라고 판명나기 전까지는

과감하게 인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제 우리민족의 시조는 단군 한분이 아니라

환국의 1대환인 [안파견] -배달국의 1대 환웅 [거발환]-단군조선의 1대 단군 [왕검]의 계보로 이어져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직책이름이 대통령이지 사실은 초대 이승만으로부터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끌어오지 않았는가!

 

⑧일본인 학자들이 최태영박사(올해 100세가 된 원로 법학자이자 역사연구가이며 독실한 기독교신자임)에게

한 충격적인 고백이다.

 

"우리도 다 안다. 우리가 조선의 역사를 왜곡조작하였다는 것을. 일본이 이렇게 빨리 문명화된 것은 다 역사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대로 알렸다가는 자부심이 없어지고 기가 죽어 안되니까 거꾸로 해서 용기를 내게 했다.

기를 살려서 청일,러일전쟁 이겼다. " <일본인 학자들 고백>

 

"일본사람들은 다 알고 속이는데 우리는 모르고 속고 있다. 우리만 모르고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 일본인들이 왜곡해 놓은대로

속고 있다" "일본땅에서 직접 일본인들의 역사기록을 숨겨놓은 현장을 목격했다. 우리의 잃어버린 사서의 대부분이

일본 황실도서관(정창원)에 주로 있을 것이다" <최태영박사 증언>

 

사료를 잃어버린 역사적사건

 

①고구려 동천왕 18년(224)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 환도성을 공략하여 사서 소각
②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연합군에 사비성 함락시 서기 소실
③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지휘, 고흥의 백제서기, 단기고사, 조대기 소실
④고구려 보장왕 27년(668년) 당나라 장수 이적의 평양성 공격시 유기 탈취
⑤고려 인종 4년(1,129) 금나라에서 고려의 주체서적 회수
⑥고려 인종 20년(1,233) 몽고란으로 흘필열에 의해 소각
⑦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
⑧병자호란(1,636)때 소실
⑨병인양요때 프랑스군대 외규장각 탈취
⑩일제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탈취, 소실
⑪기타 중국의 정사라고 일컬어지는 <史記>의 곡필 또는 가필

 

  

동이족의 기원

 

序言

 

   위에 기술한 바와 같이 역사가 왜곡되고 잃어버린 부분이 있다면 우리민족 즉, 동이족의 기원은 어디에다 두어야 할 것인가.

이제는 한분의 단군 할아버지로 묘사되던 시조개념, 그런 교육의 우는 범하지 말아야 겠다.

본인도 어릴 때 "단군 다음은 누구지?"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으니 학생들을 가르친 선생이나 그 선생을 가르친 선생이나 모두

혼돈의 시대와 잃어버린 공간을 살아온 사람들이니 만치 그들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환국 3301년-배달국

1565년-단군조선 2096년- 그리고 고구려로부터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유구하고도 찬란했던 역사.

이제부터라도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고 또 후손들에게 전하면 되지 않겠는가.

 

동이족의 조상

 

삼성기(三聖記) 하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고 한다.

나반이 처음 아만(阿曼)을 만난곳은 아이사타(阿耳斯陀)였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환(九桓)의 무리는 모두 그들의 후손이다.

 

人類之祖曰 那般 初與阿曼相遇之處曰阿耳斯陀  夢得天神之敎 而自成婚禮  則九桓之族皆其後也

 

*구환(九桓): 중국의 수많은 문헌들은 우리민족을 가리켜 동이(東夷), 구이(九夷), 구려(九黎)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이는

동이가 아홉종류기 때문이다. 구환(九桓) 역시 동일한 의미라 할 수 있다. [삼성기]에는 구환(九桓)이라는 말이 있고

[태백일사]에는 구황(九皇)이라는 말이 나온다. 두 문헌에서 말하고 있는 9환과 9황은 동일한 뜻으로,

모두 환국(桓國)에서 갈라져 나간 우리민족을 일컫는다. 즉, 본국에서 갈려져 나간 지류가 아홉종족이라는 의미이다.

 

환국桓國의 성립

 

   [삼성기]상편에 의하면 '우리 환(桓)의 건국은 가장 오랜 옛날에 있었다. 한 神이 사백력(斯白力 ; 지금의 시베리아)의

하늘에 있어 홀로 화하여 신이 되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어느날 동녀동남(童女童男) 800 명이 흑수(黑水 ; 흑룡강 혹은 바이칼 호수를 가리킴)와 백산(白山 ; 중앙아시아 일대의

천산 산맥과 알타이 산맥으로 추정)의 땅에 내려왔다.(.....) 이를 환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천제 환인(天帝桓因)이라 했으며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불렀다. 1대환인 안파견으로부터 7대환인 지위리(智爲利)까지 존속했으나 각 환인의 연대는 알 수 없다.'

 

吾桓建國最古 有一神在斯白力之天 爲獨化之神 光明照宇宙權化生萬物(.....) 日降童女童男八百 於黑水白山之地(....)

謂之桓國 是謂天帝桓因 亦稱安巴堅也 傳七世 年代不可考也

 

[삼국유사]에서는 환인을 가리켜 제석(帝釋)이라 하여  하느님과 같은 의미라고 해석했는데,[삼성기] 본문에서도 같은 의미인

천제환인이라 하여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또한 桓國을 다스린 환인도 한명이 아니라 역시 7대까지 전해졌으며

그 시조를 안파견이라고 호칭했음을 말하고 있는데, 안파견이란 '아버지'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삼성기]나 [태백일사]에 의하면 환국의 역대 환인은 7세를 전했으며 그 전체 역년은 3,301년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실재로는 7세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7세에 3,301년이라면 1세에 평균 450 년이 되는데, 이것은 7세의 역년이라기 보다

환국이 당시의 여러사정으로 인해 안정되지 못하다가 나라가 자리를 잡고 난뒤에 7세를 전했으며,

그 이전의 역년까지를 합해서 3,301년이라고 말한 것으로 사료된다. 혹 그렇지 않다면 7세이외에는 기록이 소실되었거나,

아니면 7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에 의한 환국시대의 연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역대

재위연수

환인명

서력

1대

미상

안파견(安巴堅)

BC 7197

2대

미상

혁서(赫胥)

 

3대

미상

고시리(古是利)

 

4대

미상

주우양(朱于襄)

 

5대

미상

석제임(釋提壬)

 

6대

미상

구을리(邱乙利)

 

7대

미상

지위리(智爲利)

BC 3898

 

[삼성기]에는 환국(桓國)이 12개의 연방, 즉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 필나국畢那國이라고도 한다),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 직구다국 이라고도 한다),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이국(鮮裨爾國 : 시위국 혹은 통고사국이라고도 한다), 수밀이국(須密爾國) 인데, 그땅의 넓이는 남북 5만리 동서 2만여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강역을 살펴보면 현재의 러시아 일부와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몽고, 중국, 일본, 서아시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이러한 대제국이 사방으로 쪼개져 지금도 북으로는 시베리아 일대와 남으로는 중국남부와 미얀마, 태국 일대까지도

우리민족과 비슷한 외모와 풍습을 지닌 민족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며, 심지어 아메리카 인디언,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족

까지도 동이 계통이 인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던 것이다.

12연방가운데서 수밀이국(須密爾國)은 고대 슈메르(sumer)인들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배달국倍達國 시대(환웅시대)
 

[환인]이라는 최고직책이 다스리던 환국의 역사가 7대 3,301년으로 막을 내리고 환웅이 통치하는 시대가 열렸다.

<삼국유사>에는 환웅이 환인으로부터 천부인 세 개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내려와 신시에 도읍하고 나라를 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삼성기>상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뒤에 환웅씨桓雄氏가 계승하여 일어났다. 天神의 뜻을 받들어 白山과 黑水사이에 내려왔다.(.....)

천부인天符印을 지니고 다섯가지 일을 주관하였으며, 세상에 머무르며 인간을 교화하고 크게 이롭게 하였다.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배달(倍達)이라고 하였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지상 최고이 신으로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끊이지 않았다. 신시말기에 치우천왕蚩尤天王(배달국의 14대 환웅을 말함)이 있었으니

청구靑邱를 개척하여 18세를 전했으며 그 역년은 1565년에 이르렀다』

 

 이것은 1대환웅인 거발환 환웅이, 말기 환국에서 분가하여 백두산과 흑룡강사이에 나라를 세우고 정착을 했다는 내용인데,

거발환 환웅이 나라를 세우게 된 배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삼국유사>는 서자庶子 환웅이 자주 인간세계에 뜻을

두었으므로 환인은 그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면서 인간을 교화하고 넓게 인간을 이롭게 하라(홍익인간弘益人間)면서

내려보낸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태백일사>의 신시본기神市本紀는 1대환웅 거발환이 환국에서 분가하여 지상세계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이 정황을 비교적 상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대기>에 이르기를, 당시 사람은 많고 생산은 궁핍하니 살아갈 방법이 없어 근심거리였다.

서자부庶子部의 대인 桓雄이 있어 여러 사정을 깊이 있게 듣고 살핀 뒤 하늘에서 내려가 지상에 광명세계를 열고자 하였다.

그때 안파견(여기서는 1대 환인이 아니라 7대 지위리 환인을 말함)이 지상세계의 금악金岳, 삼위三危, 태백太伯을

두루 살핀 뒤에 태백은 가히 홍익인간 할 만하므로 환웅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제 사람.물건.업이 모두 갖추어졌으니

군君은 무리를 거느리고 하계에 내려가 하늘을 열고 가르침을 배풀어 천신에게 제를 올리는 것을 주관하며.

천부天父의 권위를 세우고(.........)

  사도師道를 세워 세상을 이치대로 교화하며, 자손만대로 큰 모범이 되게 하라' 하시며 마침내 천부인 3개를 주면서

하계로 내려가 다스리게 하였다. 이에 환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신단수 아래로 내려오니 이를 신시神市라 한다.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였다.

세상에 있으면서 이치대로 교화하고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였으니 이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朝代記曰 時人多産乏 憂其生道之無方也 庶子之部 有大人桓雄者 探聽輿情期俗降天開一光明世界于地上

時安巴堅遍視金岳三危太伯 而太白可以弘益人間 乃命雄曰 如今人物業己造完矣 君勿惜勞苦

率衆人躬自降往下界 開天施敎主祭天神 以立父權(....) 以立師道 在世理化 爲子孫萬世之洪範也

乃授天符印三個遣往理之 雄率徒三千 初降于太白山神檀樹下 謂之神市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 凡主人間三白六十餘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是爲桓雄天王也

 

<삼국유사>에는 환웅을 환인의 서자庶子라고 하였는데, <태백일사>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서자부庶子部의 대인大人이라

말하고 있다. 여기서 '庶子'는 '여러아들'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왕실의 여러 왕자를 일컫는 말이며,

<조대기>의 내용처럼 환웅은 이러한 여러 왕자들을 관장하는 부서인 庶子部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에

서자부의 大人이라 하였던 것이다. 그가 나라를 세운 뒤에는 환웅천왕이라 불렀으며, 또 대인 환웅이라고도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5事(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중 곡식을 주관하는 업무(농.축업)를 분담하여 관장하던 직책의 명칭을

5가家라 하여 우가牛加, 구가拘加, 저가楮加, 마가馬加, 양가羊加를 두었는데, 곡식을 주관하는 업무는 우가가 맡았으니

<태백일사>나 <규원사화>에 의하면 고시례高矢禮에게 이일을 맡겼다고 한다.

 

고시례는 고시씨高矢氏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고사를 지낸후 또는 농사철에 들이나 야외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 또는 '고시례' 라고 외치는 풍속은 원래 먹여살리는 일을 담당했던 고시씨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삼성기>의 신시역대기가 전하고 있는 배달국 시대의 연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8대 1565년간 존속).

    

왕대

환웅명

 즉위년수

즉위년도

  수명

           비고

 1대

환웅천황(桓雄天皇)

     94

BC 3898

120세

일명 거발환(居發桓)

 2대

거불리(居佛理)

     86

BC 3804

102세

 

 3대

우야고(右耶古)

     99

BC 3718

135세

 

 4대

모사라(慕士羅)

     107

BC 3619

129세

 

 5대

태우의(太虞儀)

     93

BC 3512

115세

 

 6대

다의발(多儀發)

     98

BC 3419

110세

 

 7대

거련(居連)

     81

BC 3321

140세

 

 8대

안부련(安夫連)

     73

BC 3240

 94세

 

 9대

양운(養雲)

     96

BC 3167

139세

 

10대

갈고(葛古)

     100

BC 3071

125세

독로환이라고도 하였슴

11대

거야발(居耶發)

     92

BC 2971

149세

 

12대

주무신(州武愼)

     105

BC 2879

123세

 

13대

사와라(斯瓦羅)

     67

BC 2774

100세

 

14대

자오지(慈烏支)

     109

BC 2707

151세

치우천왕蚩尤天王 이라고도 함

15대

치액특(蚩額特)

     89

BC 2598

118세

 

16대

축다리(祝多利)

     56

BC 2509

 99세

 

17대

혁다세(赫多世)

     72

BC 2453

 97세

 

18대

거불단(居弗檀)

     48

BC 2381

 82세

일명 단웅(檀雄)이라고도 함.이른바 고조선 1대 단군 왕검의 父.

 
역년 계산법
1대  거발환 환웅 즉위년도 BC 3898년, 18대 거불단 환웅 즉위년도 BC 2381년,
3898-2381=1517년,  1517년+48년(18대 거불단 환웅재위년수)=1565년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건국
 

① 개요
<고기古記>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왕검王儉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며 어머니는 웅씨熊氏족의 왕녀이다.

신묘년(기원전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박달나무(檀樹)아래서 태어났다.(…)  

(왕검이 14세 되던 해인) 갑진년(기원전2357년)에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삼아

대읍大邑의 국사를 섭정하게 하였다. 무진년(기원전 2333년) 요임금 때 단국檀國에서 아사달 단목檀木의 터에 이르니

나라사람들이 천제天帝의 아들로 추대하였다. 이에 구환九桓은 하나로 통일되었고 신과같은 교화는 멀리까지 미치게 되었다.(…)

 

무진원년(기원전 2333년) 개천한 지 1565년 되는 해 10월 3일에 신인神人 왕검은 오가五加의우두머리로서 무리 800을 이끌고

단목檀木의 터에 정착했다.(…) 신시神市의 옛 법규를 되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이를 조선朝鮮이라 한다.

 

古記云 王儉父檀雄 母熊氏王女 辛卯五月二日寅時生于檀樹下(…) 甲辰熊氏王聞其神聖 擧爲裨王 攝行大邑國事  

戊辰唐堯時 來自檀國至阿斯達檀木之墟 國人推爲天帝子 混一九桓 神化遠(…)

戊辰元年 開天一千五百六十午年上月三日 有神人王儉者 五加之魁 率徒八白 來御于檀木之墟(…)

復神市舊規 立都阿斯達 建邦號朝鮮

 

 본문에서는 단군왕검이 14세때 왕을 보필하는 비왕裨王(卑王)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였는데

그후 단군조선에서는 우현왕右賢王 , 좌현왕左賢王이라 하여 계속해서 비왕제도를 두었고 이러한 제도는 동이족이

한 갈래인 흉노족도 그대로 답습하였다. 檀國이란 당시 배달국에 속해 있던 여러 소국 중 하나였는데,

이에 대해 <태백일사>는 "熊族중에서 단국檀國이 가장 강성했다(熊族之中 有檀國最盛)"고 전하고 있다.

여기에서 웅족熊族이란 雄族의 다른표현으로 생각된다.

 

② 건국배경
檀國은 1대 거발환 환웅에게 귀의한 웅씨熊氏가 세습하면서 다스리던 곳인데 왕검王儉이 어떻게 새로이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태백일사>에 의하면 『웅씨熊氏의 왕이 전쟁중에 붕어하니 왕검은 마침내 그 자리를 이어받아

九桓을 통일하고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熊氏王崩御戰 王儉授代其位 統九桓爲一

 

여기서 말하는 '웅씨熊氏의 왕'이 왕검의 아버지 거불단 환웅인지 아니면 熊族웅족의 왕인지는 알수 없으나

보통 환웅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웅족은 이미 환웅의 배달국에 귀속했으므로 『雄』과 『熊』을 동일한 뜻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과 같은 설명도 가능하다.

즉, 웅족熊族이 다스리던 단국檀國을 이미 비왕裨王으로 있던 왕검王儉이 섭정하다가. 웅족의 왕이 전사한 뒤

아버지인 거불단 환웅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아 아사달에 이르러 새로이 건국했을 가능성이 있다.

 
③ 단군조선 역년
 

왕대

단군명

즉위년도

왕통

재위년수

 1대

왕검(王儉)

B.C 2333년

시조

93년

 2대

부루(扶婁)

B.C 2240년

태자

58년

 3대

가륵(嘉勒)

B.C 2182년

태자

45년

 4대

오사구(烏斯丘)

B.C 2138년

태자

38년

 5대

구을(丘乙)

B.C 2100년

양가

54년

 6대

달문(達門)

B.C 2084년

우가

36년

 7대

한율(翰栗)

B.C 2047년

양가

54년

 8대

우서한(于西翰)

B.C 1993년

   ?

 8년

 9대

아술(阿述)

B.C 1985년

태자

35년

10대

노을(魯乙)

B.C 1950년

우가

59년

11대

도해(道奚)

B.C 1891년

태자

57년

12대

아한(阿漢)

B.C 1834년

우가

52년

13대

흘달(屹達)

B.C 1782년

우가

61년

14대

고불(古弗)

B.C 1721년

우가

60년

15대

대음(代音)

B.C 1661년

   ?

51년

16대

위나(尉那)

B.C 1611년

우가

58년

17대

여을(余乙)

B.C 1552년

태자

68년

18대

동엄(冬奄)

B.C 1484년

태자

49년

19대

구모소(牟蘇)

B.C 1435년

태자

55년

20대

고홀(固忽)

B.C 1380년

우가

43년

21대

소태(蘇台)

B.C 1337년

태자

52년

22대

색불루(索弗婁)

B.C 1285년

탈취

48년

23대

아홀(阿忽)

B.C 1237년

태자

76년

24대

연나(延那)

B.C 1162년

태자

11년

25대

솔나(率那)

B.C 1150년

태자

88년

26대

추로(鄒魯)

B.C 1062년

태자

65년

27대

두밀(豆密)

B.C 997년

태자

26년

28대

해모(奚牟)

B.C 971년

  ?

28년

29대

마휴(摩休)

B.C 943년

  ?

34년

30대

내휴(柰休)

B.C 910년

태자

35년

31대

등올(登 )

B.C 874년

태자

25년

32대

추밀(鄒密)

B.C 849년

태자

30년

33대

감물(甘勿)

B.C 819년

태자

24년

34대

오루문(奧婁門)

B.C 795년

태자

23년

35대

사벌(沙伐)

B.C 772년

태자

68년

36대

매륵(買勒)

B.C 704년

태자

58년

37대

마물(麻勿)

B.C 646년

태자

56년

38대

다물(多勿)

B.C 590년

태자

45년

39대

두홀(豆忽)

B.C 545년

태자

36년

40대

달음(達音)

B.C 509년

태자

18년

41대

음차(音次)

B.C 491년

태자

태자

42대

을우지(乙于支)

B.C 471년

태자

10년

43대

물리(勿理)

B.C 461년

태자

36년

44대

구물(丘勿)

B.C 425년

추대

29년

45대

여루(余婁)

B.C 396년

태자

55년

46대

보을(普乙)

B.C 341년

태자

46년

47대

고열가(古列加)

B.C 295년

대장군

58년

 

 

단국조선 그 이후

 

  단군조선 이후의 북부여, 고구려, 삼한(진한·변한·마한), 신라, 백제, 발해(대진국)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우리가 기존에 알아왔던 우리민족사의 오류들은 단군조선 까지에만 그치지 않고 그 후에 이어졌던 한반도와 중원지역에

있었던 우리의 뿌리 곳곳에 상처가 되어 심어져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정신세계사에서 발행한 [實證 한단고기,

이일봉 著, 1998. 7. 20] 및 새암출판사 발행 [古記로 본 韓國古代史, 한순근 著, 1997. 9]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민족, 시대별 역대표, 왕조계보, 연대표.

 

역대표: 한국시대/신시시대/단군조선/북부여/마한세가/번한/대진국

역대왕조계보: 고조선| 기자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 발해|고려| 조선| 대한민국|

 

한국사 연대표

 

연대

국 가

70만년


구석기 시작

신석기 시작


 

청동기 시작



철기 시작

창세기 및 신인 시대

6000


환국

BC7199~BC3898 

3000


신시배달국

BC 3898 ~ BC 2333

2000


고조선(단군조선)
BC 2333 ~ BC 238

1000


500


400


300


200


150


북부여
BC239-BC58

100


BC 50


신라
BC 57
~
935

고려에
귀순


     

고구려
BC 37
~
668

신라에
멸망

 

0


백제
BC 18
~
660

신라에
멸망

AD 50


가락(가야)
42
~
532

신라에
귀순

100


150


200


250


300


350


400


450


500


550


600


650


       

700


발해
698
~
926

거란에
멸망


750



800



850



       
       
   

태봉
(후고구려)
890~918
고려에
멸망

 

900


후백제
892~935
고려에 멸망

   
     

고려
918
~
1392

       

950



         

1000



1050



1100



1150



1200



1250



1300



1350



1400


조선
1392 ~ 1910

1500


1600


1700


1800


1900


   

일제 강점기 1910 ~ 1945

   

미군 군정 1945 ~ 1948

1950


대한민국 1948 ~ 현재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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